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30129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tg8FSaBpNts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4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예수님의 삶을 담은 기록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4권의 책으로 정리되어 전해지는 복음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와 가치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히 정리하면 예수님의 생애를 보며 우리의 가치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삶의 여정이 곧 사람이 무엇인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생각하게 하고 모두가 다르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비밀이 담긴 열쇠라는 것을 알아듣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분의 삶이 하느님 자녀의 삶을 보여주고 있고, 그분의 가르침이 그 모든 것을 채우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그 복음의 뜻 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목적으로 산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세상에 삽니다. 모든 것의 기준이 바로 이 ‘행복’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들이 말하는 이 행복함은 극단적으로 ‘개인’, 곧 ‘자신 스스로’가 느끼는 것에 있어서 그 행복이 마냥 기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당연한 듯 생각되지만 그 행복은 누구도 판단할 수 없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충족된 상태를 보기에도 너무 어렵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잊어버린 상태의 사람의 불행을 너무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금 우리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선언은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줍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우리가 세상에서 행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거기에 가난한 사람이 행복할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될까요? 행복은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도 쉽게 이를 수 없는 목표처럼 느껴집니다. 거기에 가난이라는 단어는 행복과 가장 거리가 먼 조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금만 더 가지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은 세상인지라 가난이라는 단어는 어떤 수식어가 붙어도 불행에 더 가까운 단어입니다.
“행복하여라,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행복선언은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예고나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선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은 이미 그 상태가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곧 마음이 가난한 이가 행복하다는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세상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난은 어떻게 해도 행복할 수 없는 상태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님의 말씀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생각을 한 번 완전히 바꾸어 볼 필요를 가집니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우리는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옛날식대로 말하면 못먹고 못입고 못배워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기만 하다면 우리의 삶을 불행하거나 고생스럽다고만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주님 앞에 모여든 사람들을 살펴봅니다. 예수님의 증언대로라면 주님 앞에 모여든 이 사람들 중 마음이 가난하고, 슬픔에 휩싸이고, 온유하고,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며,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이루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각오하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이 행복하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역사 속에서는 이런 인생들이 없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과거의 사람들 안에서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많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불행하기만 했을까요?
없는 집의 자식들은 다 불행할까요? 먹어본 적이 없는 것을 못먹었다고 불행할까요? 배우지 못하면 불행할까요? 이미 과거에도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 모두 사용되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세상은 배워야 할 것 때문에 불행한 것보다 이미 있는 것으로 행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이 누구와 어떤 것과 비교하더라도 그것으로 비교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삶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미 행복하다면 다음에 다가올 어떤 상황에도 우리는 그 행복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핍을 메우는 것이 행복이라면 그 메움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결핍이 불행의 이유가 될 것은 뻔합니다.
우리는 이미 행복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이란 우리에겐 없고 하느님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축복하셨고,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건 사랑하는 마음과 실천이 있다면 그 상태는 이미 천국의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만족하라는 이야기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건 그것을 아는 이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처지에서도 알 수 있고, 살 수 있는 가치라는 것입니다. 지금 행복하길 바랍니다. 지금 천국에 하느님의 자녀로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2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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