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참 용서란

松竹/김철이 2023. 1. 10. 01:00

참 용서란

 

                                                                                           김철이 비안네

 

 

상대방의 갖은 사심(私心)이 본인을 노엽게 할 땐 너그러운 웃음으로 되갚아 주고 상대방의 거친 말투가 본인을 언짢게 할 땐 부드러운 말씨로 되갚아 주면 어떨까? 상대방의 오만불손함이 본인을 노하게 할 땐 예의 바른 공손함으로 되갚아 주면 본인을 성나게 한 상대방의 마음엔 하나 더 미움을 얻고 가련함이 더해지고 본인의 마음엔 하나 더 미움이 지워지고 사랑이 더해진다. 미움이란 단지 순간적 실수일 뿐 오랜 시간 지니고 있어야 할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용서함으로써 우리 마음은 한층 성숙해져 가며 미움은 늘 우리 주변을 서성이므로 미움에 지배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용서가 만든 지우개를 마음속 깊이 품어야 할 것이다. 용서함으로써 지우개를 쟁여낸 우리 가슴속에 채워진 것 중에서 모든 미움을 지운다면 그만큼 우리의 영혼 속엔 하느님의 드높은 은총이 머물 것이다.

 

참 용서란 본인의 마음에 상처 준 이가 나에게 용서를 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본인이 먼저 손 내밀어 용서해주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용서해 주셨고, 또 용서의 모범을 보여주셨기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시작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잘못은 끊임없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 자국을 웃자라게 할 것이다.

 

농노(農奴)들의 절친이던 러시아 보로네슈의 티흘 주교님이 어느 날 그 지방의 한 영주의 집을 찾아갔다. 주교님은 영주(領主)의 영지(領地)에 귀속(歸屬)된 농노들이 줄곧 당해온 부당한 처사들을 지적하는 한편 앞으로는 자비로 대할 것을 당부하셨다. 그런데 당부하는 티흘 주교님의 말투가 너무나 강경하고 단도직입적이어서 강압처럼 느껴졌던 영주는 몹시 분노하여 언성이 높아지더니 급기야 주교님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이 같은 영주의 행동에 참을 수 없었던 주교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왔다. 그러나 얼마간 걸어갔을 때 주교님은 본인의 언행에 잘못이 있음을 깨닫고 그 즉시 영주의 집으로 되돌아간 주교님은 영주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다. 영주는 너무 크게 놀란 나머지 주교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함께 용서를 청했으며 아울러 서로 용서와 더불어 축복을 빌어 주었다. 그 이후, 영주는 자신 잘못을 회개하고 농노들을 향한 그의 언행을 부드럽고 관대하고 친절하게 함으로 그 지방 전역에서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 가운데 “저희가 용서하오니”하고 기도하는데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는 용서할 마음을 자아내야 한다. 용서할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잘못한 상대가 와서 정중하게 용서를 청하면 그제야 “그래 네 잘못을 네가 알렸다.!”라며 용서해주는 행위가 진정으로 용서할 마음일까? 용서를 청하는 상대에게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용서해주는 행위는 억지 용서이고 잘못된 모습일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기꺼이 용서하는 모습을 주님께서 보고 싶어 하실 거라는 것이다.

 

사실 용서할 마음이라는 것은 이미 용서하고 있는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나열한 이야기에서 티흘 주교님과 영주의 사이를 묵상해 보자. 사실 애당초 잘못은 영주에게서 불씨가 일고 주교님의 영주를 대하는 태도에도 문제는 있었지만, 영주가 잘못한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기도 하다. 아울러 주교님의 태도에 화가 난 영주의 행동에 또다시 잘못이 있음이 아닌가.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주교님과 영주의 다툼의 과정에서 있었던 자신 잘못을 깨달은 주교님의 사과에 영주도 자기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청하게 되며 근본적인 문제까지도 변하여 인품 좋은 영주로 살았다는 것이다.

 

주교님의 이런 모습이 용서할 마음을 갖춘 모습일 것이다. 상대의 잘못을 크게 생각하기보다 자기 잘못을 먼저 살피고 성찰하여 상대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자신 잘못에 대한 용서를 먼저 청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야기 속의 주교님처럼 본인의 잘못부터 앞서 살피고 성찰하여 앞뒤 가리지 않는 참 용서를 먼저 청할 수 있는 영혼을 쟁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