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223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HcqHhyBUZY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12월 23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요르단 강에서 용서의 세례를 베푼 요한은 그 가문의 이름을 타고 나지 않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하느님의 사람이었던 요한은 태어나 처음 이름을 가지는 순간에 ‘하느님의 자비’라는 의미로 요한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자비’는 가장 가깝게는 아이 없이 살아가던 그 어머니 엘리사벳에게 의미가 되었고, 나아가서는 구세주의 오심을 알리며 죄를 씻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알린 인물로 요한을 드러냅니다. 어렵사리 얻은 아기의 이름을 지을 때 자신의 이름도, 가문의 이름을 물려주는 대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또 사람들에게 하실 일에 대해 정한 셈입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
말문이 닫혀 버린 아버지 즈카르야는 자신의 손으로 이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으며 하느님이 하신 일을 인정하고 증언합니다. 동시에 그의 말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에게도 이 아들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이었고, 아이의 역할 역시도 그런 하느님을 세상에 전하는 일임을 알아들었던 즈카르야였던 셈입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모든 이의 시선이 아 아이에게 쏠린 것은 당연합니다. 그 과정과 내용이 위인의 일생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그 가운데 하느님이 계심이 확실하니 사람들은 모두 이 아이에게 주목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멈추어서게 하는 것이 중요했던 하느님은 먼저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것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그것이 요한의 존재였고, 그는 그 계획에 가장 충실한 사람, 곧 사람들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이는 하느님의 자비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광야에서 요한이 사람들 앞에 섰을 때도 같은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요한에게서 하느님의 이미지를 보았고, 하느님 앞에 서기 전 기회를 주는 이 광야의 예언자의 이야기에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심판 앞에 서야 했던 사람들은 자신보다 훨씬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 앞에서 두려워하며 온 몸을 물에 잠글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보살핀 요한은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먼 곳에서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구세주의 탄생도 한쪽에서는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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