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013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PeUhNZXfuew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라는 표현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닌 우리의 근본을 말하는 밀접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닮은 사랑스런 존재이고, 하느님의 뜻도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아버지 하느님이시지만 사실 우리는 하느님과 별로 가까운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은 너무 멀고, 높고, 대단한 분인 듯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분이 지니신 ‘심판’이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을 잊을 정도로 우리에게 큰 무게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을 듣지만, 그것을 진심보다는 의무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을 믿으면서 기쁨과 행복보다는 인내와 희생 등의 이미지가 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불행하여라.”
어제부터 예수님으로부터 불행하다고 지적을 받는 이들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의인으로 불리고, 하느님께 큰 정성을 바치고 율법을 준수하며 어디에서나 윗자리에 앉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이며 사람들에게 신앙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예수님은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결국 사람들을 하느님께 멀게 만들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리고서,”
우리가 하느님을 멀리 느끼는 이유는 하느님의 것을 어렵고 심오한 것처럼 만들어 버린 이들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신앙이라는 말을 단계가 있는 듯 또 강하고 약한 정도가 있는 듯 만든 것도 그들의 책임입니다.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 심판자로 오신 주님이 우리에게 심판 대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심판이라는 말과 연결시켜 천국을 희망이 거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 역시 이를 전하는 이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너무나 정확히 알고 계셨던 겁니다. 그리고 그 때도 지금도 그 자리의 주인공들은 참 변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2:00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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