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길

주현미 - 샌프란시스코 (1952)

松竹/김철이 2022. 8. 31. 20:41

주현미 - 샌프란시스코 (1952)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f6zOmJddlZ8

 

 

 

노래이야기

 

6.25 전쟁 당시, 세계 각지에서 우리나라로 파병 온 군인들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전쟁으로 다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해외 외료진도 많았는데요. 1952년, 작사가 손로원 선생님은 적십자기를 달고 부산항에 입항한 두 척의 큰 배를 보게 되고, 그 배에서 내리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이야말로 평화의 사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해외 여러 나라들에 대한 동경을 담아 노래를 작사하게 되는데요. 그 곡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전쟁 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하고, 그들의 문화를 접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문물에 대한 동경이 커졌고요. 다른 나라로 여행가고 싶다는 꿈도 커졌는데요. 그래서 이런 흐름은 우리 가요에도 반영돼서 '인도의 향불' '페르시아 왕자' '나포리 맘보' '하와이 연정'처럼 이국적인 제목의 노래들이 속속 발표됐는데요. '샌프란시스코'도 그렇게 그 당시 트렌드를 반영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로원 선생님이 작사하고, 박시춘 선생님이 작곡한 '샌프란시스코'는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장세정'선배님이 노래했는데요. 장세정 선배님은 1921년 평양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와 떨어져 할아버지의 보살핌 아래 자랐고요. 화신백화점 악기부에서 일하다가 노래를 잘한다는 소문에 콜롬비아 레코드에 스카우트되었습니다. 그리고 1936년, 평양방송 개국기념 무대에 올라 노래해서 큰 갈채를 받은 모습이 '오케 레코드사'의 '이철' 대표 눈에 띄어 오케 레코드사로 스카우트되었는데요. 훗날 장세정 선배님은 바로 이철 대표와 백년가약을 맺게 되지요. 그러고 보면 이때가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케 레코드사로 스카우트되면서 장세정 선배님의 가수인생도 꽃을 피우게 되는데, 이때 취입한 노래가 바로 장세정 선배님의 히트곡 '연락선은 떠난다'입니다. 그리고 김정구, 남인수, 이난영 선배님과 함께 장세정 선배님은 오케 레코드사를 대표하는 가수가 되었지요.

 

장세정 선배님은 데뷔 당시 청순한 음색과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는데요. 1940년 일본에 잠깐 체류하면서 성악발성을 익혔고, 그 영향으로 다른 가수들과는 조금 다른 세미클래식 창법을 구사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역시 바로 그런 장세정 선배님의 매력을 만날 수 있는 곡인데요.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

 

네온에 불빛도 물결따라 아롱대는 꽃그림자

빌딩에 날아드는 비둘기를 부른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내일은 뉴욕으로 내일은 뉴욕으로 떠나가실 님이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손짓하는 님 그림자

달콤한 큐피트에 쌍고동이 울린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이트 여객기가 나이트 여객기가 유성같이 나른다"

 

현실은 해외여행을 감히 꿈꾸지도 못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 노래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가보고 싶은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말로만 듣던 뉴욕으로 비행기를 타고 멀리 멀리 날아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요. 산뜻한 멜로디와 선망 가득한 노랫말, 그리고 유려한 장세정 선배님의 목소리는 전쟁의 절망 속에서도 숨 쉴 수 있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곡은 장세정 선배님의 노래로도 사랑받았지만, 이후 백설희 선배님이 다시 불러서 또 한 번 히트했는데요. 장세정 선배님이 결혼 이후 잠시 미국으로 건너가자 1962년, 백설희 선배님이 이 노래를 자신의 스타일로 다시 노래했고, 1960년대 당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샌프란시스코'가 상당한 인기가 있을 무렵이어서 또다시 빅 히트를 기록한 거지요. 그리고 1976년에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나라 가수들이 미국 전국을 순회하는 한인 순회공연을 펼쳤을 때, '샌프란시스코'는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로 사랑받았습니다.

 

현실이 팍팍하고 힘들수록, 우리는 어디론가 아름다운 곳을 찾아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가지요.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외로 떠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샌프란시스코'처럼 마음은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노래가 있어서 우리는 위안을 받게 되는데요. 여러분이 떠나고 싶은 그 곳을 상상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를 감상하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