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신라의 북소리 (1954)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d_y0igVT3c0
노래이야기
우리 가요계의 흐름을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역사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활발하게 발표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일제 강점기로 인해 억눌렸던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다시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방랑시인 김삿갓’ ‘효녀 심청’ ‘사도세자’ ‘백마강’같은 노래들이 사랑받았고, 그중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시대를 다룬 가요들도 많았습니다.
1931년 발표된 ‘마의 태자’는 ‘경주’를 테마로 가장 맨 처음 발표된 곡이었는데요. 시조시인이었던 이은상 선생님이 작사하고, 안기영 선생님이 직접 작곡하고 노래한 ‘마의 태자’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첫째왕자로, 신라가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을 논의하자 이를 끝까지 반대하며 결국, 개골산에 들어가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낸 ‘마의 태자’이야기를 노래에 담았고요. 이 곡은 주권을 빼앗겼던 우리 민족의 애통한 마음을 대신 전하는 노래로 사랑받았지요. 그리고 해방 이후부터 ‘경주’와 ‘신라’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활발하게 발표됐는데요. 그 중심에는 바로 현인 선배님의 ‘신라의 달밤’의 성공이 있었습니다.
유호 선배님이 작사하고, 박시춘 선생님이 작곡한 ‘신라의 달밤’은 1947년에 발표되자마자 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는데요. 일제 강점기 시절의 노래들이 주로 단조 위주의 슬픈 멜로디 위주였던 것에 반해서, ‘신라의 달밤’은 생동감 넘치는 창법과 멜로디로 각광받았고요. 화려한 천년사직을 간직한 신라를 노래하면서 이렇게 귀한 민족사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워준 노래가 바로 ‘신라의 달밤’이었습니다. 성악을 전공했던 현인 선배님의 독특한 창법은 신민요나 기존 트로트와 다르게 시원한 청량감을 선사했고요. 이후, 가수를 꿈꾸는 지망생들 역시 누구나 한번쯤 현인 선배님의 창법을 따라 부르기도 했는데요. 그중에 한 명이 바로 가수 ‘도미’ 선배님입니다.
‘도미’라는 이름은 예명이고요. 본명이 ‘오종수’였던 ‘도미’ 선배님은 1934년 경북 상주의 감나무 골에서 태어났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가수 현인 선배님을 너무 좋아해서, 현인 선배님의 창법과 발성을 따라하면서 노래를 익혔고요. 1951년, 대구 계성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오리엔트 레코드사’가 주최한 제1회 전속가수 선발대회에서 입상할 만큼 노래실력이 뛰어났다고 해요. 하지만, 도미 선배님은 ‘가수’의 꿈을 이루는 대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는데요. 군인의 길은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얼마 다니지 않아 중퇴하고, 다시 고려대 영문과를 다녔지만, 계속해서 생각나는 노래에 대한 열망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결국, 가수 현인 선배님을 발굴하고 곡을 줬던 작곡가 ‘박시춘 선생님’을 찾아가서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테스트 삼아 노래를 불렀는데, 그 곡이 바로 현인 선배님의 ‘신라의 달밤’이었습니다.
도미 선배님이 노래한 ‘신라의 달밤’을 듣자마자, 작곡가인 박시춘 선생님은 그 실력을 인정했고요. ‘오종수’라는 이름 대신 ‘도시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뜻을 가진 ‘도미(都美)’라는 예명을 지어주면서 노래를 취입시켰는데, 이 곡이 바로 도미 선배님의 데뷔곡인 ‘신라의 북소리’입니다.
“서라벌 옛 노래냐 북소리가 들려 온다
말고삐 매달리며 이별하던 반월성
사랑도 두 목숨도 이 나라에 바치자
맹서에 잠든 대궐 풍경 홀로 우는 밤
궁녀들의 눈물이냐 궁녀들의 눈물이냐
첨성대 별은 -
화랑도 춤이더냐 북소리가 들려 온다
옥피리 불어 주던 님 간 곳이 어데냐 -
향나무 모닥불에 공 들이는 제단은
비나니 이 나라를 걸어 놓은 승전을
울리어라 북소리를 울리어라 북소리를
이 밤 새도록 -
금오산 기슭에서 북소리가 들려 온다
풍년을 노래하는 신라제는 왔건만
태백산 줄기마다 기를 꽂아 남기고
지하에 고이 잠든 화랑도의 노래를
목이 메어 불러보자 목이 메어 불러 보자
달래어 보자”
‘신라의 북소리’에는 신라와 관련된 시적 장치와 소재들이 다양하게 구사되고 있어요. 서라벌의 북소리, 말달리는 함성, 원화와 화랑의 훈련소리, 첨성대의 별, 금오산 등이 연상되는 가사는 그 당시 유행했던 역사노래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가사를 쓴 ‘야인초’ 선생님이 평소에 경주 신라문화 축제에 관심이 많아 두루 답사한 경험이 바탕이 되었고요. 현인 선배님의 ‘신라의 달밤’과 함께 경주를 대표하는 노래로 사랑받았습니다.
특히, 이 노래에서 도미 선배님의 창법은 현인 선배님의 영향을 받아 많은 부분이 흡사한데요. 그래서 제2의 현인이 등장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후 도미 선배님은 1956년 ‘비의 탱고’와 ‘청포도 사랑’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확실하게 선보였고요. 특히, ‘청포도사랑’은 우리나라 데이트가요의 효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청춘남녀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딸기와 포도가 익어갈 무렵이면 너도나도 교외선 기차나 시외버스를 타고 청포도 밭과 딸기밭으로 데이트를 나가는 커플들이 참 많았다고 하지요. 그리고 이후, ‘청포도 언덕길’ ‘청포도 로맨스’ ‘청포도 피는 밤’ ‘청포도 고향’ 등 청포도가 제목에 들어가는 노래들이 속속 등장한 걸 보면, ‘청포도 사랑’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작은 모방에서 출발한다는 말이 있지요. 현인 선배님을 존경하고 좋아해서 현인 선배님의 창법을 따라 부르며 가수가 된 도미 선배님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음악적 방향성을 찾았기 때문이겠지요. 혹시라도 경주에 들르신다면, ‘신라의 북소리’를 들으면서 천년고도 경주를 걷노라면,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색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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