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길

주현미 - 두메산골 (1963)

松竹/김철이 2022. 4. 27. 19:01

주현미 - 두메산골 (1963)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606kwLf1gnM

 

 

 

 

 

노래이야기

 

불세출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풀어보면, 아닐 , 세상 , .. 좀처럼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한번 볼까말까한 예술작품이나 뛰어난 사람에게 우리는 불세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우리 가요사에서 불세출의 가수라는 수식어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사람은 바로 가수 배호 선배님일 겁니다. 작년이 배호 선배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 50주기가 되는 해였지만, 여전히 지금도 배호 선배님을 그리워하는 팬클럽이 활동하고 있고요. 비가 오는 날이면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가 자욱이 낀 날이면 어김없이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라는 명곡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지난 시절,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던 배호 선배님의 굵고 중후한 바리톤의 목소리와 절정 부분에서의 애절한 고음은 언제나 정겹고 애잔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배호 선배님은 1942년 중국 산둥성 지난(濟南)에서 태어났는데요. 평안도 출신의 부모님을 따라 광복 이후 귀국선을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배호 선배님의 가족은 인천과 서울, 부산 등지를 떠돌면서 고생스러운 삶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배호 선배님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 혼자 서울로 올라와 넷째 외삼촌인 김광빈 선생님의 권유로 드럼을 배우게 됐는데요. 처음에는 드럼을 살 돈이 없어서 등받이가 없는 둥근 의자에 천을 씌워 드럼처럼 두들기며 연습을 했고요. 그렇게 피나는 노력으로 천상의 드러머가 되면서 악단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배호 선배님의 음악적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가수의 길로 인도한 사람은 바로 넷째 외삼촌인 김광빈선생님이었습니다. 김광빈 선생님은 전국민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엄마야 누나야를 작곡한 분으로 유명한데요. 중국 산둥성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다가 광복 후 한국에 돌아온 후, 피아노와 아코디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1950년대 중반 김광빈 악단을 꾸려서 국내에 유럽풍 음악을 알렸고, 초대 MBC 악단장을 지내기도 했죠. 그뿐 아니라, 배호 선배님의 셋째 외삼촌인 김광수 선생님 역시 KBS악단장으로 활동했었는데요. 그러고보면, 배호 선배님의 음악적 DNA는 외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이렇듯, 음악적 소양이 풍부한 집안에서 자라면서 외삼촌들에게 악기 연주를 배운 배호 선배님은 악단에서 활동하면서 무대 경험을 쌓았는데요. 넷째 외삼촌인 김광빈 선생님이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면서 1963. 스물한살의 나이에 첫앨범 황금의 눈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가 바로 배호 선배님의 데뷔곡이자 히트곡인 두메산골이죠.

 

두메산골이 발표된 시절. 1960년대의 한국사회는 급격한 시대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농경 중심의 시대에서 산업화 시대로 옮겨가는 변화 속에서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 애썼고요. 그러다보니, 고향을 떠나는 이농현상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그 무렵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한 이농인구는 무려 350만명이나 되었다고 하죠. 하지만 도시에 온다고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짓는 사람들이 많아졌고요. 일할 수 있는 청년들이 너도나도 도시로 나가면서 고향에 남아 농사짓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요.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정서를 오롯이 담아낸 노래가 바로 두메산골이었습니다. 반야월 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김광빈 선생님이 작곡한 두메산골은 배호 선배님의 애절한 목소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위로의 노래가 되어주었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향 찾아서

너보고 찾아왔네 두메나 산골

도라지 꽃피는 그날 맹서를 걸고 떠났지

산딸기 물에 흘러 떠나가도

두번 다시 타향에 아니 가련다

풀피리 불며불며 노래하면서 너와 살련다

 

혼을 넘어 재를 넘어 옛집을 찾아

물방아 찾아왔네 달 뜨는 고향

새소리 정다운 그날 울면서 홀로 떠났지

구름은 흘러흘러 떠나가도

두번 다시 타향에 아니 떠나리

수수밭 감자밭에 씨를 뿌리며 너와 살련다

 

 

작곡가 김광빈선생님으로부터 처음 두메산골의 악보를 받았을 때, 배호 선배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삼촌~ 이 노래 촌스러워요”. 그러자, 그 얘기를 들은 김광빈 선생님은 당시 톱히트 레코드전속가수였던 김해광선배님에게 두메산골의 악보를 건넸고요. 배호 선배님은 김광빈 선생님이 작곡한 다른 노래 굿바이사랑의 화살을 녹음했는데요. 얼마 후, 김광빈 선생님은 편곡을 다시 해서 두메산골을 또다시 배호 선배님에게 건네줬고, 그제서야 배호 선배님은 혼신을 힘을 다해 멋지게 두메산골을 녹음해서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다고 하죠. 그리고, 7년 후, 1970년에는 배호 선배님이 직접 두메산골을 빠른 스타일로 편곡해서 다시 녹음했는데요. 새로 편곡한 두메산골은 원곡과 비교할 때, 경쾌하고 박력이 넘쳐 흐르고요. 현란한 드럼소리가 특징적입니다. 아마도 드럼의 명수였던 배호 선배님이 직접 편곡을 했기 때문에 드럼파트가 더 부각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보는데요. 시간이 되실 때, 리듬과 강약고저의 조화가 완벽한 1970년도 두메산골을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배호 선배님의 또다른 스타일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두메산골을 통해서 배호선배님은 폭넓은 음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수려한 가창력과 흐느끼는 듯한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가요계의 스타로 급부상했는데요. 배호 선배님의 발음까지도 매력적이어서 그 당시엔 섹시한 모음의 가수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특히 많은 여성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요. 이후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1970년에는 무려 29개의 상을 받으며, 그해의 가요상을 모두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세웠죠.

 

지병으로 인해 스물아홉이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팬들의 곁을 영원히 떠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수를 뽑을 때, 언제나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불세출의 가객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배호 선배님을 보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데요.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색안경을 낀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며, 반박자 느린 슬픔의 미학을 보여주었던 배호 선배님의 노래는 단순하게 흘러간 노래가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불려지고 사랑받고 있는 그리운 노래고요. 불세출의 아름다운 가객이었던 배호 선배님의 데뷔곡 두메산골을 오랜만에 감상하시면 여전히 그리운 고향에 대한 향수와 애틋함이 다시 떠오를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