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길

주현미 - 금박댕기 (1949)

松竹/김철이 2022. 4. 7. 23:08

주현미 - 금박댕기 (1949)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0kb40kqyQPs

 

 

 

 

 

노래 이야기

 

봄이 되면 화사한 계절 답게 여기저기서 결혼 소식도 많이 들려오는데요. 우리나라 전통 혼례에서는 혼인을 앞둔 처녀들은 금박댕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붉은 비단 바탕에 여러가지 금박 글자를 찍은 금박댕기에는 주로 부귀공명과 장수를 비는 뜻으로 부((((() 등을 글자를 즐겨 썼는데요. 금가루나 금종이로 의복이나 장식품에 문양을 찍어낸 것을 부금(附金)이라 하는데,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예복에 주로 금박을 입혔고요. 여인들의 땋은 머리 끝에 장식으로 드리우는 댕기에다 금박을 찍은 금박댕기는 그만큼 신분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상징했었죠.

 

금박댕기는 우리나라 가곡에도 등장하는데요. 김말봉 작시, 금수현 작곡의 그네에서는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란 대목에서 곱고 화사한 댕기를 봄바람에 나풀거리며 그네를 타는 처녀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고요. 우리 가요 중에서도 댕기가 등장하는

 

노래들이 많았는데, 이미자 선배님의 자주댕기’, 김세레나 선배님의 제비댕기’, 남미랑 선배님의 갑사댕기’, 그리고 백난아 선배님의 노래 중에 금박댕기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곡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찔레꽃이란 노래로 너무나도 친숙한 백난아 선배님의 본명은 오금숙이었는데요. 1923년 제주 한림읍에서 태어난 선배님은 세 살 때 가족들과 만주로 이주하였고 아홉 살 때는 함경북도 청진에 정착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일본인이 경영하던 악기점에서 매일 새로운 유행가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며 자랐는데요. 노래를 좋아했던 어린 금숙은 늘 이 노래를 따라 불렀고, 이러한 행동을 눈여겨본 악기점의 주인은 어린 금숙에게 콩쿨대회에 참가해볼 것을 제안했다고 하죠. 그 결과, 어린 금숙은 빅타레코드 주최로 열린 청진의 신인콩쿨에서 1등을 차지했는데, 이때 나이가 열세살이었지만, 엄격한 집안 분위기 탓에 콩쿨에서 우승한 사실을 숨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여러 콩쿨대회에서 입상을 하자, 집안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고요. 그러다 1940. 태평레코드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콩쿨 대회에서 2등에 입상하면서 김교성 선생님에게 발탁되어 태평레코드사의 전속가수가 되었죠. 그리고, 이 대회의 심사위원이었던 백년설 선배님은 오금숙이라는 이름 대신, 살결이 희고 달덩이처럼 예쁜 데다 난초를 좋아한다고 해서 이름을 백난아라고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무려 다섯 차례 콩쿠르에서 연속을 입상할 만큼 실력 있었던 백난아 선배님은 나이는 어렸지만, 성량이 풍부하고 목소리 또한 화려하고 매력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표현력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서 2의 박향림으로 기대를 모았는데요. 이런 기대 속에서 취입한 백난아 선배님의 데뷔곡은 처녀림 작사, 이재호 작곡의 "오동동극단"이었고,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하면서, 1941년에는 김교성 선생님과 작업한 노래 아리랑 낭랑’ ‘직녀성’,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백난아 선배님의 대표곡인 찔레꽃이 모두 히트하며 성공을 거두었고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 직전까지 태평레코드에 전속으로 있으면서,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해방 직후에는 파라다이스 쇼단을 운영하면서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고요. 1949년부터는 럭키레코드 전속으로 새로운 노래들을 발표했는데, 그 시절 발표한 노래들이 우리가 다 아는 낭랑 18금박댕기입니다.

 

1949. 주인욱 선생님이 작사하고, 박시춘 선생님이 작곡한 금박댕기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랫말로 유명한데요. 이 노래가 발표될 당시의 시대상황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해방 후, 남북과 좌우로 갈려 대립하면서 6.25 발발 직전의 위태로웠던 시대상황 속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탄생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오히려 그 험난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사람들의 마음과 평화를 갈망하는 소망을 노래로나마 달래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황혼이 짙어지면 푸른 별들은

 

희망을 쫓아보는 병아리더라

 

우물터를 싸고도는 붉은 입술은

 

송아지 우는 마을 복사꽃이냐

 

 

 

화관(花冠) 쓴 낭자 머리 청홍사 연분(靑紅絲 緣分)

 

별들이 심어놓은 꽃송이구나

 

물동이에 꼬리치는 분홍 옷고름

 

그날 밤 나부끼는 금박댕기냐

 

 

 

목동이 불어주든 피리소리는

 

청춘을 적어보는 일기책이다

 

수양버들 휘늘어진 맑은 우물에

 

두레박 끈을 풀어 별을 건지자

 

 

 

 

 

가사에 나오는 "화관"도 여인의 머리에 이는 머리장식 중 하나입니다. "청홍사 연분"은 청실과 홍실로 엮인 인연이라는 의미인데, 전통혼례에서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혼인을 청할 때, 청실과 홍실을 땋아 보내는 풍습에서 유래한 단어로 혼인의 인연을 의미하고 있죠. 이런 단어들을 섞어 노랫말을 만들면서 금박댕기는 혼인약속을 한 처자의 행복과 사랑스런 마음을 표현했는데요. 백난아 선배님의 고운 창법과 음색을 통해 온전하고 사랑스러운 평화의 메시지가 풍부하게 흘러넘치는 곡이 바로 금박댕기입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뛰어난 미모로 그 당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멀리 일본, 만주, 중국에서 까지 관중들의 환호를 받고 인기를 독차지했던 백난아 선배님은 시대를 앞서간 여성으로도 손꼽히는데요. 각종 위문공연과 재일교포 위문공연을 하며 사회봉사에 앞장섰던 부케 악극단의 대표로서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흥행쇼 단장의 직무를 해내며 여장부의 면모를 보여줬고요. 그런 그녀의 모습은 당시 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용기를 북돋아준 본보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5년의 활동 끝에 부케 악극단을 접고, 이후 1970년 교포를 위문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백난아 선배님은, 이때 한국의 국악인들을 불러들여 일본에서 우리의 판소리를 지도하기도 했고요. 귀국한 이후인 1985년부터는 서울 충무로에서 수도예술학원을 설립해 작곡가 나화랑, 형석기 그리고 영화배우 이민씨 등을 교수로 모시고 후학을 양성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기도 했죠.

 

그래서, 지난 2005제주도 여성 특별위원회에서는 , 현대 100여년간 직업별 제주여성 1를 정리한 책을 발간하면서 시대를 앞서간 제주여성-언론, 문화, 체육분야에서 1호 여성으로 가수 백난아 선배님을 선정했구요. 2007년에는대표곡인 찔레꽃 노래비도 제주 한림읍 명월리에 세워졌습니다. 이렇듯 역사의 질곡을 헤쳐 오며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백난아 선배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어머니의 품속처럼 푸근하고 자애로움이 느껴졌던 백난아 선배님의 노래를 추억하며, 복잡한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금박댕기에 담겨진 순수한 사랑을 만나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