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07/ 이웃은 나의 거울이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ePOeBUWLlXM
2021년 다해 대림 제2주간 화요일 – 이웃은 나의 거울이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오늘 복음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의 내용입니다. 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게 중요하냐면, ‘기쁨’ 때문입니다. 그 양을 찾으면 기쁘지만, 그 양을 찾지 못해도 기쁩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나 자신이 누구냐는 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었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내가 믿는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존감’이라고 합니다. 행복은 세상 것들을 소유함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항상 내 자존감의 수준으로 수렴합니다. 승진하여도, 복권에 당첨되더라도, 이혼하더라도 몇 달 뒤면 지금 수준의 행복감으로 되돌아옵니다. 그 행복함의 수준이 나의 자존감입니다.
그런데 나의 자존감은 어떻게 측정될 수 있을까요? 내가 이웃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로 측정됩니다. 이웃은 나의 거울입니다. 내가 이웃을 그리스도로 보면 나도 그리스도의 자존감을 가진 것이고, 내가 이웃을 가치 없게 생각하면 나도 가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평가하는 내 가치대로 이웃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입니다. 나를 돼지로 보는 사람이 이웃을 어떻게 부처로 볼 수 있을까요? 이웃을 돼지로 보면 나는 어디에 사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에서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큰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맞는 말입니다.
영화 『디 아더스』(2001)는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서 아이 둘을 데리고 저택에 사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빛을 보지 못하는 희소병을 앓고 있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가정교육을 열심히 합니다. 하인 세 명을 고용하게 되는데 그들이 온 이후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이들은 유령을 보았다고 말하고 엄마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엄마는 처음에 믿지 않았지만 이상한 일들이 자꾸 발생하여 결국 하인들이 집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알고 하인들을 쫓아냅니다.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나는데, 하인들은 영매(무당)가 빙의하여 그들을 만난 유령들입니다. 이 말은 유령이 아니면 엄마와 아이들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집에 살려고 유령을 쫓아내기 위해 영매를 통해 누군가가 엄마와 아이들을 집에서 떠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사실 엄마는 독일군에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아이들 입을 틀어막고 있다고 아이들이 죽은 것을 알고 자신도 자살한 유령입니다. 이 유령들이 집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철저히 자신들은 살아있고 이웃들은 모두 자기 집을 빼앗으려는 유령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유령이니 이웃도 유령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웃은 나의 거울입니다. 내가 이웃을 보는 그대로 나도 나를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을 유령처럼 보면 나도 유령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을 바꾸려고 합니다. 하지만 거울에 손을 넣어 나의 머리와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고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부처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자존감을 높여주시기 위해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자리를 내어드리고 우리는 멀찍이서 우리가 그분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웃도 그리스도로 보입니다. 이 마음이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 양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웃이 모두 유령으로 보이면 그 사람은 지옥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이 모두 그리스도로 보이면 그 사람은 천국에 삽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모습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이 됩니다.
김하종 빈첸조 신부님의 『사랑이 밥 먹여 준다』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순간’이란 장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사제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가장 가난한 한 사람을 목자와 양으로 만나며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은 이 이야기는 우리가 왜 어린 양 한 마리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해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옮겨봅니다.
내 사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1992년 맑고 화창한 계절의 어느 날 찾아왔다.
당시 나는 성담 상대원동과 은행동에서 가난한 이웃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도움을 주는 ‘빈민 사목’을 하고 있었다. 주로 홀로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장애인들의 집을 방문해 도움을 드렸다.
어느 날,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종이에 적힌 주소를 보며 집에 찾아갔다. 도착한 곳은 아주 오래되고 낡은 집이었다. 어둡고 곰팡내 가득한 지하로 내려가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들어오세요. 문 열려 있습니다”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창문도 없는 어두운 방에 흐릿한 전등 하나만이 보였다. 너무 어둡고 덥고 냄새가 나서 몇 초 동안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고 나서 방바닥에 누워 있는 오십 대 아저씨를 발견했다.
나는 아저씨 옆에 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이십 대 시절, 사고로 크게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어 그때부터 30여 년을 이 지하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더니 “이웃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 음식을 가져다주면 먹고 아니면 굶어요”라고 했다.
30여 년 동안 혼자서 그렇게 살아오셨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떤 도움이든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했더니, 방을 정리해달라고 하셨다. 방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었고 요강을 이용하고 있었다. 냄새가 심해 우선 요강부터 닦았다. 방 청소와 설거지를 한 후 다시 바닥에 앉았다. 그때 갑자기 아저씨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치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제가 안아드려도 될까요?”
아저씨는 흔쾌히 “네 신부님, 좋습니다”라고 응했다.
아저씨를 안는 순간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내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그 순간, 어떤 음성이 또렷하게 들렸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그 목소리가 예수님이 나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임을 확신했다.
내가 삶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곳은 바로 어둡고 곰팡이 가득한 지하 방이었다. 그분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웃의 헐벗은 삶은 예수님의 옆구리의 상처였다. 예수님은 지하 방의 삶을 통해 그분의 상처를 보여주고 계셨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그 상처를 조건 없는 사랑으로 치유해 주기 위해서다. 내 삶을 내놓으며 이웃들의 상처를 내가 품기 위해서다. 버림받은 이들, 가난한 이들, 고독한 노인들, 가정으로부터 도망 나온 청소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피 흐르는 상처다. 오늘도 변함없이 예수님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게 해주신 것을 찬미한다.
김하종 신부님이 가장 보잘것없는 한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셨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당신 자신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면서 결국 그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 양을 그리스도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람도 그리스도로 보게 되었다면 그 냄새 나는 덥고 좁은 공간은 천국이 됩니다. 억지로라도 내가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믿고 그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보는 거울도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가네히라 케노스케의 책 제목처럼 거울은 먼저 웃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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