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위령성월 맞이 묵상 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김철이 비안네
아주 지독한 구두쇠 부자 노인이 계셨는데 돈을 모으는 걸 삶의 목적으로 살았다. 일가친척들은 물론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서 돈을 모았다. 그 결과 이제는 거액이 예치된 통장도 여럿 되고, 서울 강남에 빌딩을 하나 가지고 있어 매달 나오는 월세만 해도 한 달에 몇천만 원씩 되고, 강릉 쪽에 몇천 평 되는 땅도 있었다, 노인의 삶의 유일한 재미가 통장 들여다보고 돈 불어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쥐어뜯을 듯이 아팠다. 이 구두쇠 노인은 아프면 절대 병원엘 가지 않았다. 병원에 갈 돈이 아까워서였다. 심하게 배가 아프니 평소처럼 어디가 아파도 쉽게 발랐던 유일한 약인 아까징끼(머큐로크롬)를 거의 한 병을 쏟아붓듯 배꼽에다 발랐으나 전혀 효험이 없었다.
배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다 장남을 불러 “아이고~ 얘야! 이러다 나 죽겠다. 병원에 좀 데려다 다오.” “어이쿠 세상에 살다 살다 우리 아버지가 병원엘 다 가신다고, 해가 서산에서 뜨겠습니다.” 의사 권유에 따라 종합검사를 하기로 했다. 종합검사 결과가 나와 장남과 병원엘 갔더니 의사가 혀를 차며 “아이고 영감님,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도록 놔두셨어요? 위암이시고요. 앞으로 삼 개월밖에 살지 못하십니다. 그러니 가서 드시고 싶은 것 실컷 드시고 병원엔 더는 오실 필요 없겠습니다.” 하늘이 노랗고 땅이 흔들렸다. 다른 건 다 아깝지 않은데 한평생 안 먹고 안 쓰며 모아 온 돈을 제대로 한 번 못써보고 죽는다는 것이 원통하고 절통했다. 수백억을 모으느라 남의 눈에 수없이 많은 피눈물 쏟게 했는데…
그날 가족회의가 열렸으며 자식들이 한방에 앉았는데 언성도 높아지고, 노인이 화장실 가던 중 “도대체 이놈들이 무슨 얘길 하길래 이렇게 소란스럽나 싶어” 귀를 기울였더니 제 아비가 아직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유산 다툼으로 온통 아비규환이었다. 며느리들은 며느리들끼리 “형님은 그래도 뭐 돈이 많으니 아버님 유산을 덜 받아도 되잖아요.” “동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동서야말로 재산이 얼만데 욕심을 부리냐? 둘째는 명동의 건물 갖고 막내는 강원도 평창의 땅을 갖고, 그래도 우리는 장남에다 장손이니까 강남에 있는 빌딩을 가지면 공평하겠다.”
큰며느리의 말에 둘째 셋째 아들이 대들어 싸우고, 이러한 꼴불견들을 지켜보던 구두쇠 노인이 팔십이 다 돼서 죽기 삼 개월 전에서야 철이 든 것인지 ‘아~ 헛되고 헛되구나. 결국엔 내가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며 돈을 모아 돈 때문에, 자식새끼들끼리 멱살잡이 하며 싸우게 들었구나.’라며 때늦은 후회를 하며 자식들을 불러놓고 마지막 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너희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내 재산, 삶아먹든 튀겨먹든 마음대로 하고, 마지막 이 아비의 원(願)이 있다. 이거만큼은 반드시 들어주어야겠다. 너희가 내 원을 들어줄 수 없다면, 내가 평생 모아 온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할 것이야.” 기겁한 자식들이 혼비백산하여 “뭡니까? 아버지 뭐든 다 들어 드릴 테니 제발 기증하신다는 말씀만은 말아주세요. 아버지께서 평생 모으신 전 재산을 저희에게 나누어 주실 건데, 마지막 아버지 원을 들어 드리지 못하겠습니까.” “내가 살, 날이 삼 개월 남았다고 하니 내가 죽고 나면 내가 들어갈 관을 특수 제작하여 관의 양옆에 구멍을 뚫어 양손을 관 밖으로 빼놓아라. 그리고 병풍을 치지 말고 관을 반듯이 벽에다 세워놓고 양손이 빠져나오게끔 하여야 한다.” 처음엔 자신들에게 돌아올 책망을 생각하여 부친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천부당만부당 펄펄 뛰었으나 행여 부친이 자신들 몰래 법적 대리인을 사서 부친 사후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조치를 취해 놓았나 싶어 부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삼 개월 후 구두쇠 노인은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은 부친이 원하는 대로 관 양쪽에 구멍을 뚫어 양손을 관의 양쪽 밖으로 빼놓았으며 병풍을 치지 않고 관을 벽에다 세워놓았다. 문상을 오는 사람마다 “이런 잡놈들, 제 아비 시신을 저렇게 천대를 하다니 이놈들 천벌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위인들 같으니” 문상 오는 사람마다 난리라서 앞앞이 해명을 하려니 귀찮았던 자식들은 부친의 유언을 프린트로 인쇄를 하고 코팅해서 벽에다 써 붙여놓았다.
문상을 온 구두쇠 노인의 고향 친구가 구두쇠 노인의 자식들을 불러 “너희 아버지가 양손을 관 밖으로 내놓으라고 했던 뜻을 깨우쳤느냐?” “아닙니다. 아직은…” “그렇다면 너희 아버지가 너희에게 물려준 돈을 모으기 위해 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느냐?” “그 또한 모릅니다만,” “예끼! 몹쓸 사람들 같으니, 사실은 너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내게 전화를 걸어와 너희가 아버지 재산을 두고 형제간에 아귀다툼을 벌였던 자초지종과 너희 아버지가 엉뚱스러운 유언을 하게 되었던 이유를 일러주더구. 너희 아버지가 제 아비 유언의 뜻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너희에게 물려줄 재물을 모으기 위해 숱한 사람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해야 했고, 아무리 아파도 병원을 찾기는커녕 아까징끼(머큐로크롬) 몇 방울로 해결하곤 했는데, 너희가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냐! 너희 아버진 너희에게 인생은 모름지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고 싶었던 게야.” 뒤늦게 부친 유언의 뜻을 전해 들은 구두쇠 노인의 자식들은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사람은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하는 법, 죽음의 기로에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라는 회개로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43절)라고 하신 예수님의 은총으로 낙원에 든 우도(右盜)처럼 평생 재물을 모으느라 선(善) 한번 행하지 못했지만, 생의 마지막 날 뭇사람의 기억 속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진리를 깨우쳐 준 부자 구두쇠 노인도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은총으로 낙원 엘 들지 않았을까 싶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2020년 위령성월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로 자청했고 하루살이 생을 추구하는 우리는 “죽음”이라는 두 단어 속에 숨겨진 오묘한 뜻을 묵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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