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kPQw0yMS3fo
복음의 내용을 나타낼 사진을 찾다가 누군가의 뒷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누구도 하지 않는 일, 그래서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누구도 하지 않아서 옳지 않음을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야 했던 시기에 그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그 일을 함으로써 바보가 되고 어리석은 이가 됩니다. 물론 그 댓가는 혹독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조차 반대하는 길을 걷는 일이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누구도 생각하거나 청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에 사람들이 그랬듯 정해진 운명처럼 신앙생활을 했고 하느님의 뜻도 백성의 스승들이 전해주는 것에 익숙해 살았습니다. 변화를 싫어하고 또 그럴 이유도 없는 것이 삶이었습니다. 그 운명의 고리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면 그만이고 그것을 숙명이라 생각하면서 그래도 하느님이 언젠가 보답을 주시리라 아니면 죽어서라도 천국에 보내주시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며 평생의 죄인처럼 살거나 아니면 축복받은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며 살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삶과 말씀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않은 '어떤 것'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가슴이 뜨거워지고 하지 않아도 되었던 일들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판단과 선한 일을 해야 하고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부족함이 겹쳐진 상황에도 하느님을 찾으며 행복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알았으니 가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혹 이 불길을 싸움으로 말하려 할지도 모르지만 주님은 이 불을 싸움으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불길에 휩싸인 분은 희생되셨고 놀림감이 되셨으며 끝까지 모든 이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당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셨기에 사람들은 모두 그분을 조롱하면서도 보게 되었고 그 강렬한 십자가가 결국 모든 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부활의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이 불을 가지고 세상에 뛰어드는 무모함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모한 이는 기쁨과 즐거움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들이 일으키는 분열의 세상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곧 그렇게 하느님은 제 위치를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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