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松竹/김철이 2020. 10. 24. 03:15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H_zTps5ygA

 

 

양팔을 벌리고 있는 천칭저울은 무게의 정도를 재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상대적인 무게를 통해 무게의 경중을 가리거나 같은 값을 구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 저울은 '상대적'인 가치의 기준으로 사용됩니다. 그 저울의 접시에 올려지는 것은 늘 비교를 당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비교하는 것이 우리의 삶과 더욱 닮아 보이는 것은 우리는 보편적인 것보다 훨씬 개인적인 가치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잴 수 없는 가치의 상징적인 개념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재어 보기를 좋아합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 큰 파문을 일으키십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시며 그들의 죽음의 이유를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지은 잘못이 더 크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은 사람들의 짐작으로 헤아려지지 않지만 주님은 오히려 지금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서지 않으면 이유를 모르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죽음처럼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식의 짐작 속에 마지막을 맞게 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미 늦어버린 듯 보이는 우리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주님은 이야기 한 편을 통해 들여다 보게 하십니다. 포도밭에 심겨진 무화과나무 꽃을 찾아보지 못하는 이 나무에 기대하는 것은 그 열매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을 줄 모르는 나무가 무성한 잎만을 길러낼 때 주인은 원하는 바를 찾지 못하고 그 나무를 베어 버리려 합니다.

 

나무는 무성한 잎으로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지만 정작 맺어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함은 그 미래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의 모습과 같습니다. 죄가 무성하지만 그것이 삶의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무화과를 주인은 참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를 아끼는 재배인은 주인에게 한 해의 기회를 청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누군가의 불행에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살피는게 좋겠다고 조언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을 위해 예수님이 하실 일을 이렇게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이유를 묻고 원인을 따지기를 좋아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제한적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의 크기를 비교하기 보다 우리가 모두가 따라야 할 하느님 말씀 앞에 어떤 모습인지 말입니다. 다른 가지들과 잎이 다 똑같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