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15by0fg_rrc
아는 것과 사는 것의 차이는 언제나 우리를 따라다니는 숙제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신앙이라는 단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면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아는 것에 대한 생각은 집착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부족해서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때 늘 우리가 아는 것이 모자라서라고 생각하고 더 배우기 위해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것을 가지고 있다 여겨지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 앞에서 겸손해지는 일들도 많습니다. 배움의 자세는 늘 옳고 칭찬받는 태도니 말입니다.
그 지식에 있어서 100점을 받았다면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요?
오늘 지식에서 100점을 받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에 대한 지식을 주님께 물었던 그는 그가 알고 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많이 기뻤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예수님께 질문의 내용을 바꿉니다. 내가 아는 것을 넘어 실제 의인이라는 인정을 바랍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바로 이 사람에게 들려주시는 교훈입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 하느님 때문이라고 말하며 죽어가는 이를 돕지 않는 이들과 같은 사람인 그는 죄인인듯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 죽어가는 이를 돕는 것을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착한 사마리아인은 그에게는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진실은 누구든 죽어가는 사람은 구해야 하고 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지키는 당연한 선행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든 그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100점을 받고도 그것으로 부끄러움을 당한 율법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답을 알고 있다면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실천의 이유가 되고 해답이 됩니다. 살지 않으며 아는 것에 매달린 사람. 그는 자신이 아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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