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松竹/김철이 2020. 10. 3. 01:43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jtadfGoBR7E

 

 

예수님의 사명을 받아 들고 여행을 떠난 일흔 두 제자들. 그들은 열두 제자들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명을 완수하고 주님께 돌아왔을 때 모두 흥분에 가득찬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 아래 마귀들이 복종하는 것을 체험한 이들은 분명 마귀들림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이들을 구해 준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돌봄에 마귀들이 물러가고 평화를 찾은 사람들에게서 그들은 자신을 보낸 스승을 떠올렸고 돌아오는 가뿐한 걸음에 기쁨을 하나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증언하십니다. 하늘로부터 사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또 한 번 제자들은 기뻤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심해야 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그들은 이제 마귀도 함부로 해칠 수 없는 이들이 되었지만 그보다 그들이 하느님에게 기록되었음을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 그것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따라 일어납니다. 말씀을 전하고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뜻하고 그래서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모두 함께 일어나는 경우를 체험하게 됩니다. 어쩌면 기도로 기다리는 응답보다 실천에서 알게 되는 하느님의 뜻과 답이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시작할 때의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여리고 부족합니다. 모든 것이 시작이기에 깨달음도 지식도 온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실천될 때 그 뜻이 비로소 드러나고 심지어 하느님의 전능하심도 직접 체험하는 경우를 만납니다. 

 

그 때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기뻐하고 하느님이 내 편이심을 알게 됩니다.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주님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는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철부지들"이라는 단어, 아직 철이 들지 않아 잘 모르고 잘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세상에 드러나고 고통받는 이에게 드러날 때 그 일을 하시는 것이 하느님이심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체험의 수혜자보다 그 일을 하게 된 사명을 지닌 사람이 더욱 잘 알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놀라던 이가 자신에게 만족하기 시작하면 하느님의 것은 자신의 것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그들의 이름이 하느님에게 기억됨을 기뻐하라 하시며 격려하시지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그 보다 우리 자신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지혜와 뜻은 우리의 지혜와 슬기로움만으로 헤아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은 늘 우리의 생각과 다른 방향에서 엉뚱한 사람에게서 드러날 때가 많고 그들은 우리 보다 작은 이, 부족한 이가 될 확률도 높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능력자, 지혜로운 자를 생각하며 그들에게 하느님을 찾지만 말입니다. 

 

이런 상식도 무너질 필요가 있겠지만 하느님의 뜻이 바뀌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오히려 철부지가 자신을 과대포장하지 않기를 바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