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리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클릭):www.youtube.com/watch?v=0bBCPVhjcDM
누군가 높은 자리에 오른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높은 자리는 일반적으로 섬김을 받는 자리입니다. 돈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자리이지요. 그래서 이런 이들에게는 ‘긴장감’이 좀처럼 없고 이미 지닌 것을 누리고 유지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 됩니다. 그리고 힘들고 애써야 하는 일은 가급적 아래 사람에게 맡길 뿐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이는 아랫사람이 구체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것을 쓰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실제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도움이 되고 아랫 사람의 능력이 구체적으로 어떠한가에 달렸다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얼마나 더 확장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높은 이들은 실제 일이 개선되기를 크게 기대하지 않고 현 상황이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자신들에게 큰 불편 없이 돈이 벌리고 안락이 보장될 수만 있다면 그저 하는 일이 계속 굴러가는 정도만 신경쓰면 그만인 셈이지요.
이러한 현상은 높은 자리에 세상적 부귀영화가 결탁된 곳이면 어디에나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가 오히려 부담스럽기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차지한 자리가 하느님 나라의 도전을 항상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상태를 지속하다가 결국 하느님의 반대자가 되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분께서는 지체 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지혜 6, 5)
- 자신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이상 아랫 사람의 생사고락은 자신에게는 전혀 '상관없는'일이 됩니다.
- 뭔가 바뀌어야 한다,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흔히 아래에서 나오는 주장이고 그것이 윗 사람의 현 상태를 위협하는 정도의 큰 힘으로 자라나지 않는 이상은 별다른 변화를 겪지 못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 위에 있는 이들의 주머니에 여전히 돈이 들어가고 그 돈이 안녕을 보장해준다는 믿음이 있는 한 자연이 파괴되든, 가난한 이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든 자신과는 별다른 상관없는 일이 됩니다.
- 이는 스스로를 '높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만이 아니라 한 가정에서도, 작은 소그룹에서도 어디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고 그 믿음에서 기인하는 자발적인 헌신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믿음은 얼마나 전해지고 있을까요? 그건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면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믿음의 사람이고 그 믿음을 전하려고 할까요? 어쩌면 우리도 우리의 안녕을 꾀하고 편의 위주의 삶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을런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올바로 비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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