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습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uYtwfVmyZV4
"예, 여기 있습니다."
이제 익숙한 대답입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기 전 우리는 늘 이름을 불리고 그 부르심에 이렇듯 대답하고 나섭니다. 독서직, 시종직, 부제품, 사제품을 받을 때 이름과 세례명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대답하고 이 대답으로 시작된 직무를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책임감을 가지고, 주님의 제대에 시종으로 봉사하고, 식탁의 봉사자로 교회에 봉사하며 나아가 주님의 제대에서 생명의 빵을 나누는 직무를 수행합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어떤 곳에서 그렇게 살게 되리라 생각하거나 꿈을 꾸지는 않습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약속했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길을 떠납니다. 사제는 서품을 받는 순간부터 사제가 되어간다는 감명 깊은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의미일 뿐, 사제는 서품과 동시에 사제가 됩니다.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한 사제. 무능한 사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부터 하는 일 모두가 사제로서의 삶이 됩니다.
야고보 사도의 축일. 욕심 많은 형제들은 어머니까지 나서서 자신들의 복된 미래의 삶을 꿈꿉니다. 그리고 주님께 그 청을 올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형제들은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대답한 대로 살게 됩니다. 그들이 그 삶을 알았을까요? 그들이 가지고 싶었던 것은 주님의 왼쪽과 오른쪽 자리였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주님의 길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주님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들이 예상한 대로가 아닌 주님이 원하신 삶을 살고 하느님께 갔습니다.
사도의 축일에 사도의 어리석은 욕심과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을 보며 스무해가 다 되어 가는 그 무수한 대답과 약속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금도 무수히 이 길을 걷는 이들이 그들의 대답에 담긴 사도의 길을 깊이 살폈으면 합니다. 주님의 소망과 그 길은 여전히 우리가 바라는 그 결과와는 다른 듯 주어지겠지만 사실 우리가 바랄 것은 그 자리가 아니라 주님이길 주님도 원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참 무식했고 그래서 즐거웠던 잔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잔에 취해 주님과 나누는 식사를 언제쯤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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