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17iTSJvYoAw
밭의 가라지의 비유가 등장하고 오늘 예수님의 해설을 다시금 듣습니다. 좋은 씨를 뿌린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세상은 밭입니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들입니다. 악한 씨를 뿌린 것은 악마라고 알려주시는 예수님.
이런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우리는 혹시 우리가 가라지가 아닐까 하고 고민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많은 이들이 마치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성경을 대할 때를 많이 봅니다.
예수님의 해설이 있어도 우리는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로 내 몰곤 합니다. 겸손이라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아버지를 마치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우리를 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교만한 표현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믿으며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그리스도의 곁에 있는 밀의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을 때 가라지와 함께 자라는 밀의 입장에서 들어야 합니다. 상상과 묵상이 자유롭다 하더라도 그 시작이 틀리면 우리는 도무지 어떤 판단도 가능하지 않은 묵상을 하게 되고 맙니다.
우리가 가라지라면 밀이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더욱이 우리가 악마가 심어 놓은 가라지라면 우리가 회개하고 뉘우친다고 밀이 될 수 있을지 농촌 들녘에 땀흘리는 농부들에게 물으면 긍정적인 대답을 한 마디라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말씀을 들으며 이해해야 할 것은 밀을 지키기 위한 하느님의 판단을 이해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라지와의 공존이 왜 일어나는지 알고 밀로써 더욱 튼튼하게 자라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헛갈리게 하는 이들, 곧 가라지의 기준이 남을 죄짓게 하는 이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이들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는 것으로 가라지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을 멈추고 바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혼란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아들과 딸이 시시때때로 나의 부모는 누구인가 하고 어리석은 질문과 의심과 걱정에 휩싸이는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서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흔들리는 것, 그리고 무수히 많은 상황 속에서 힘든 것은 분명 가라지와의 삶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가라지로 의심하는 이가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사제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0) | 2020.07.29 |
---|---|
QR로 듣는 교황님 말씀|창밖으로 내 던지십시오! (0) | 2020.07.28 |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0) | 2020.07.27 |
“할 수 있습니다.” (0) | 2020.07.25 |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0) | 2020.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