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https://youtu.be/oEIKnWdPR14
보좌시절 크게 아팠던 끝에 통풍이라는 골치아픈 친구를 만났습니다. 30대 초반 통풍이 드물던 때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며칠을 앓았습니다. 풍선처럼 부어오르는 발을 어쩌지 못하고 울기만 하다 병원에서 통풍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다른 병과 이름이 헛갈려 다들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통풍의 아픔은 어느 정도라고 말하기 힘들고 그냥 아프고 눈물나도록 고통스럽습니다. 10년도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한 번 시작하면 각오하고 보내야 합니다. 고통의 정도는 신기하게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익숙함은 고통을 예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던 지난날과는 달리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늘었습니다.
다시 생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시작되는 전조증상이나 통증의 시작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기에 정도에 따라 성사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니 통풍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아프고 골치 아프긴 하지만 뭐. 그런데로 함께 다닐만 하게 된 겁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함께 우리가 성령을 기다리며 새겨야 하는 주님의 말씀들은 주님이 겪으신 일들에 대해 우리가 잊지 않고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계시던 자리에 우리만 남겨진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그 자리에 서야 하고 세상이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의 역할이 주님의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주님이 겪으신 세상의 모습은 우리가 바로 마주해야 할 것들입니다.
스승을 완전히 알았다고 고백하며 믿음을 보이는 제자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모두 당신을 버리고 도망가게 될 것임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때를 미리 격려하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미 알고 가는 걸음이 고통이라도 예수님은 익숙한 듯 말씀하시고 직접 그 길을 거침 없이 걸어가십니다. 제자들은 스스로 완전한 진리이신 주님을 고백하고서도 자신들을 위해 주님 곁을 비우고 떠나는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알고 있는 간접적인 목격자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겪으실 주님의 말씀은 곧 제자들이 겪을 일들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자리에 서야 했던 제자들도 세상이 주님을 대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구하시러 오셨음에도 세상을 당신의 말씀하나로 순식간에 바꾸시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리고 그것을 심어 우리가 스스로 그 길을 찾고 따르도록 하셨음은 주님이 우리를 당신의 소유물이 아닌 존재로 존중하심을 나타내고 사랑하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던히도 인내심을 가지고 이 과정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도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떠남으로써 주님을 외롭게 했고 그분을 버렸지만 결국 그분의 부르심을 온전히 받게 되고 세상을 맡는 중대한 사명을 이어받습니다.
그런 주님을 알고 이해하며 닮아가는 것. 세상이 주님을 아프게 했던 그 이유들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약하고 부족한 제자들과 우리에겐 더욱 고통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앓았던 주님의 상처와 고통의 정도를 알기에 우리는 그 상황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피하면 좋을 일. 그러나 세상에 여전히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가올 상황들을 미리 짐작하는 우리를 준비시킵니다.
오늘 발가락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그칠지 내일 아침엔 다리를 절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밤 해야 할 일을 하고 내일 미사를 준비합니다. 내일은 내일 살면 될 일이니 걱정없이 잠을 청하는데 집중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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