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松竹/김철이 2020. 5. 18. 09:01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https://youtu.be/wcgqMMfOasA

 

 

5.18입니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경험한 광주의 이야기는 두려움과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진전을 보고 나선 길. 쫓아오는 전경에 이유 없이 쫓기며 부산역 지하도로 도망을 쳤을 때 그 안에 터진 최루탄에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출구를 손으로 더듬어서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교정에는 최루탄이 매일 날아들었고 집으로 가는 길 육교에서는 늘 데모를 하는 형과 누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정의인지 아직 잘 모르는 아이에게 어른들의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고 누구도 그렇게 사람을 대할 수 없다 배웠던 한 아이에게는 어른들을 경멸하게 되는 그리고 그런 힘을 가지기를 바라는 문화를 멀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때린 사람과 맞은 사람이 마주하는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편을 들어야 한다면 당연히 맞은 사람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된 사춘기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사람을 얼마나 위험하게 하는지 세상은 늘 위협적으로 가르쳤고 실력을 키우고 힘을 키워 반대편을 뒤집고 보복을 하려 한다는 억지스런 누명도 그때부터 계속 보았던 모습입니다.

 

 

그 때조차 모두가 잊었던 옛 사건이었지만, 그 늦은 분노를 가졌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는 오늘. 조금은 달라진 세상에서 그 날을 맞습니다. '사태'라고 말했고, '폭도'라고 말했던 사람들의 반대편에는 절대 권력과 힘을 가졌던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군인과 민간인의 대치가 마치 대등한 관계인듯 이야기하는 어이없는 이야기들이 지금도 계속되지만 그래도 세상은 그 시선의 교정을 일부 이루어가는 듯 보입니다.

 

 

주님 승천이 다가오는 시간 우리는 연이어 계속되는 성령의 약속과 함께 주님 없이 주님과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될 제자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당부를 듣습니다. 선하게 살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또 공격을 받게 될 때 주님은 당신을 생각하라 하십니다. 그 때 주님이 그러하셨듯 주님 편에 있는 이들은 힘 없고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구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억압하거나 이용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주님을 증언하고 주님의 옳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안에 움직이시는 성령이시고, 또한 주님을 아는 이들일 것이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정의와 선함, 그리고 사랑은 회당에서 내어 쫓기고 힘과 능력으로 회당을 장악한 이들의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예로부터 하느님조차 그 이름 외에 어떤 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단지 하느님이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시고 심판하시는 분으로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물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으로 몫을 다했다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느님의 축복이라 말하며 회당을 자신들의 즐거움으로 채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하느님은 그 힘있는 이들의 배경이요, 그들의 힘이 되어 버리시고 실제 성전에 갇혀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며 충실한 역할이라 말했습니다.

 

 

그 성전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그렇게 성전 밖에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처럼 정의를 외치는 이들도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 주님은 그들이 기억으로 그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당신에 대한 기억은 생각이 아닌 경험으로 알게되는 하느님의 진리와 뜻, 사랑의 가치를 말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당신의 자리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지니고 상황에 마주하길 바라십니다. 그래서 보호자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느님의 뜻을 알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으십니다.

 

 

세상의 정의는 늘 상대적인 이유들로 싸움을 벌입니다. 그러나 그 세상에 참 정의를 심으신 하느님의 뜻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배웠고 그것이 사람이 사람됨을 찾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며, 그 내용은 투쟁이나 싸움이 아닌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상황을 기억하는 오늘, 그 다툼에 희생된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쓰러지기까지 침묵하고 몰랐던 모든 잘못에 대해서 여전히 가슴아파하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폭력 앞에 마주하는 삶을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