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마음을 담다’ 광고 ‘제 이름은 김소희입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이 목소리는 기가지니 AI 음성 합성 기술로 복원된 김소희 씨의 목소리입니다”라는 자막이 쓰여 있다. 최근 KT에서 따뜻한 기술로 국민 개개인이 일상에서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얻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마음을 담다’라는 캠페인을 공개했다. 첫 에피소드는 ‘제 이름은 김소희입니다’로, 태어나자마자 청력을 잃고 살아온 농인 김소희 씨의 사연이었다. 소희 씨의 가족은 인터뷰에서 그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소희 씨의 어머니는 "딸이 이 세상에 나와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속상해했고, 언니는 갖고 싶은 것을 써보라는 설문 조사에서 “목소리를 갖고 싶다고 답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동생이 말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이유였다. 소희 씨의 딸과 아들은 "어머니와 소통이 잘되지 않아서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답했다. 이에 KT가 소희 씨에게 목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고안한 해결책은 기가지니 인공지능(AI) 음성합성 기술이었다. 소희 씨의 목소리를 유추하기 위해 구강 구조를 분석하고, 가족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소희 씨의 목소리는 친숙하게 느껴지면서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음성이었다. 이 목소리는 다소 딱딱하게 들리는 감이 있긴 하지만, 퍽 자연스러운 억양과 발음을 갖고 있었다. 소희 씨는 이 목소리로 가족에게 하고 싶었던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가족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 캠페인은 영상이 공개된 후 일주일 만에 7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많은 호응을 받았다. 영상이 올라온 유튜브에는 ‘사람 냄새 나는 기술’,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AI를 이렇게 활용하다니’ 같은 댓글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이 영상을 보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농인/청각장애인 당사자거나, 농인을 가족으로 둔 지인들 역시 이 캠페인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가족은 농인인 소희 씨와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자신들이 수어(수화언어)를 배워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소희 씨가 ‘말을 하고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이는 수어가 구어와 동일한 지위를 갖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전형적인 청능주의(Audism)다.
수어는 청인 중심적 사회에서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일상적으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에게나, 구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에게나 마찬가지다. 나는 인공와우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으로, 할 줄 아는 수어라곤 “안녕하세요”와 지화 몇 개 정도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던 친구들 중 농학교를 가장 빨리 ‘졸업’하고 통합교육을 받았던 내가 수어를 접해본 적이 없음은 매우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주변 사람들은 내 장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했다. 엄마는 내가 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펑펑 울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이해력과 지능이 낮다고 여겼다. 학교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내 친구에게 ‘장애인 친구’라며 놀려댔다. 한편 청각장애가 있음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칭찬을 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차별적인 말을 하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항상 무엇을 하든 장애가 내 발목을 붙잡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커버링(주류에 부합하도록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자제하는 것)을 하기 시작한 이유였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내 인생의 전환점이나 다름없는 사건을 경험했다. 새 학기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내 청각장애를 밝힌 것이다. 같은 반 아이들이 내 장애를 인지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겪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 장애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고민할 수는 있게 되었다. 이후 나는 장애 인권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많은 활동을 해왔다.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수어 공부였다. 수많은 학생 중 청각장애인은 나 한 사람뿐이었지만, 나는 그 공간에서 가장 큰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농문화는 무수한 청인들 틈에서 홀로 안 들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외로움을 덜어주었고, 수어는 내가 ‘비장애인들’처럼 듣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에 자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는 확신을 주는 언어였다. KT ‘마음을 담다’ 광고 ‘제 이름은 김소희입니다’ 유튜브 영상 댓글들. 어릴 때라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인공와우 수술 후 수어를 배우는 대신 언어치료를 받았다. 공부를 좋아하던 어린 내가 선생님을 붙잡고 몇 시간씩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언어치료를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음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내게 외국인인지, 아니면 어릴 때 외국에서 살다 온 것인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도 수선집에 갔다가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겐 악의가 없다.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듯한 얼굴이다. 그 탓에 나는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았는데 혼자서 돌을 수백 개씩 맞은 개구리가 되어버리곤 한다. 내 발음이 부정확하더라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닐 텐데, 왜 내 발음의 출처를 확인해야 하는 걸까? 유학은커녕 여행으로라도 외국 땅을 밟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어떤 사람은 지적해달라 요청한 적도 없는데 내가 말할 때마다 발음을 교정해주곤 했다. 이렇게 청각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공통 경험이 바로 발음 교정과 의혹이다. 설령 청인으로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운 억양과 매끈한 발음을 가진 청각장애인이라 해도 평가를 피해갈 순 없다. 보통 이런 식이다. “잘 들으시네요? 말하는 것도 전혀 청각장애인 같지 않으신데요.”
말하는 사람은 칭찬이라고 생각해도, 평소에 그가 청각장애인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한마디다. 이는 청각장애인이 자신의 언어를 끊임없이 검열하게 만든다. 네이버 웹툰 ‘복학왕’ 248화는 이러한 편견을 잘 보여준 사례로, 청각장애인 캐릭터의 속마음이 어눌한 발음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만화가 공개되었을 당시, 많은 곳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대해 청각장애인은 원래 발음이 어눌하지 않냐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인권단체와 당사자들이 내놓은 항의는 부정확한 발음을 가진 청각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청각장애인의 발음을 존중하고 편견을 재생산하지 말라는 요구에 가까웠다. 청각장애인에게는 매끄러운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다. 다양한 목소리와 손짓을 상상할 줄 아는 사회가 필요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KT의 캠페인은 매우 실망스럽다. 합성된 목소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것은 기술이 청각장애인을 치료하여 청인처럼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농인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은 손이 아닌 소리로 잘 말하기를 강요하는 기술이 아니라, 음성언어를 수어와 문자로 통역해주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소보로’는 인공지능 음성인식 기술을 통해 음성을 문자로 전환해주며, ‘쉐어타이핑’은 속기 프로그램을 통해 실시간 문자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손말이음센터나 수화통역센터에서는 다양한 통신 매체를 통해 통화 중계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인공지능 음성합성기술처럼 고차원적인 기술을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들의 삶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장애인의 삶을 구원할 기술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당사자와 함께하는 구체적인 고민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KT는 앞으로도 ‘마음을 담다’ 캠페인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술은 분명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는 모두가 ‘치료’되어 비장애인이 되는 미래가 아니라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미래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