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영접/대림 제3주간

松竹/김철이 2019. 12. 16. 02:37

영접

 

                                                     김철이 비안네

 

 

옛날에 매우 어리석은 농부 한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아내는 현명하여 아내가 집안의 모든 일들을 이끌어갔다. 아내는 농작물을 내다 팔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며, 집안의 일꾼들을 관리하면서 농장의 모든 일과 집안의 모든 일들을 결정하였다. 농부 한스는 아내가 걸핏하면 자신을 돌대가리라고 욕하는 통에 아내하고 그만 헤어질까도 생각하였으나, 딱히 별 재주도 없고 해서 참고는 살았지만,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내가 다리를 다쳐서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의 다리가 채 낫기 전에 암소를 한 마리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인 한스가 암소를 끌고 시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아내는 남편에게 그 암소는 젖도 많이 나고 육질이 좋아서 300만 원 이하로는 절대로 팔아서는 안되며, 특히 말이 많은 장사꾼은 믿지 말도록 단단히 일러두었다.

 

남편이 시장에 도착하자 많은 장사꾼이 농부의 소를 보고 농부에게 말을 걸어왔다. 농부는 아내가 일러준 말을 생각하여 대꾸도 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에게도 소를 내주지 않았다. 농부는 소를 팔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끌고 돌아왔다. 그는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며 아내에게 야단맞지나 않을까 걱정하였다.

 

농부가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어느 마을의 성당 곁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성당 문이 열려있어 호기심에 성당에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성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농부는 입구에 있는 기둥에 소를 매어놓았다. 그리곤 자신은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성당 안 오른쪽 뒤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서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말없이 서 있던 그 사람은 성 안토니오 성인상이었다. 그 성인상에는 돼지도 그려져 있었으므로 농부는 그가 돼지를 취급하는 장사꾼으로 생각했다. 성인상은 계속 침묵을 지켰으므로 농부는 그 성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농부는 성인에게 자신의 소를 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여러 번 물어도 대답이 없자 농부는 자기 말을 무시하는 상인의 태도에 무척 화가 나서 지팡이로 성인상을 후려쳤다. 그러자 농부 앞에 한 자루의 돈이 툭 떨어졌다.

 

좋아, 네가 내 소를 살 줄 알았어, 네가 입을 조금이라도 열었더라면 내가 치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하면서 농부는 그 돈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편 성당 지기가 성당 문을 닫기 위해서 성당에 들어오다가 암소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안토니오 성인상 뒤에 숨겨두었던 자기 돈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울고 불며 그 사실을 본당 신부에게 말했다. 성당 지기는 아내가 돈을 마구 써버리는 스타일이라서 성인상 뒤에 돈을 감추어두고 얼마씩만 집으로 가져다주곤 했던 것이었다. 본당 신부님은 성당 지기에게 소를 대신 가져가라고 내주었다. 성당 지기는 집에 가서 아내에게 본당 신부님이 선물로 암소를 주셨다고 자랑하였다. 매일 놀면서 돈이나 써대던 아내는 그 이튿날부터 우유를 직접 짜서 먹게 되었고, 그러고도 남아서 동네 사람들에게 우유를 팔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내도 돈 버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님을 알고 살림도 알뜰히 하게 되었으며, 돈 버는 일에 재미도 붙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다른 암소를 살 수 있었고, 점차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어리석은 농부 한스도 그 일이 있고부터는 아내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나름대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가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을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도 아니며, 안토니오 성인으로부터 기적을 얻어 누릴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한 신심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수도자들의 아버지인 안토니오 성인을 돼지 장사꾼으로 여길 만큼 무지하고 신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토니오 성인을 만나면서부터 매우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하여 삶이 좋아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 상대역으로 나오는 성당 지기 역시 손해를 입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반전이 되어 더 좋아질 수가 있었다. 안토니오 성인과 우연히 마주친 가정, 그리고 그 가정에 연루된 사람의 가정까지 성인으로 인하여 기적의 혜택을 입은 것이었다.

 

수많은 성인 중 하나도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이 함께해주신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기쁨과 은총으로, 기적으로 가득 찰 것인지 상상해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심을 느낄 수 있다면 기쁨과 일상에서의 수 없는 기적의 은총을 얻어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 없는 작은 기적들을 알아볼 수 있는 은총일런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우리 문제에 갇혀 있을 때 나 자신 안에서, 이웃 사이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나 경이로운 일이 일어나도 쉽게 알아보지 못하고 잘 보이지 않는다. 성탄절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볼 수 있고 만져볼 수 있는 형태로 다가오셨음을 기념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 안에 그리고 이웃 안에 이미 오셔서 함께 살고 있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것마저 그분의 은총이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그 회개의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다면 그 기쁨 자체가 곧 그분을 체험했을 때의 기쁨에 가까운 것이고, 그만큼 예수님을 발견하는 눈이 밝아지는 게 아니겠는가? 기쁨의 주간인 대림 3주간 전례를 통해서 회개와 기쁨 속에 참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우리 최대의 소망이자 기쁨일 것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실 자리를 비워두는 한편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을 간절히 구해야겠다. 더불어 기쁨의 촛불이 더욱더 세차게 타오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한층 더 정화해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