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돈 얘기하는 신부가 되기"/정호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19. 11. 25. 08:50

"돈 얘기하는 신부가 되기"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은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그 때 신자들에게 해야 하는 이야기 중 '돈'에 관한 가르침을 피해가기는 어렵습니다. 성직자가 신자들에게 할 돈에 관한 이야기가 '교무금', '봉헌금', '미사예물'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항목 이상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왠지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말하는 신부도 또 듣는 신자도 마찬가지라 여깁니다.


이야기가 액수로 진행되면 부담보다 불쾌함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도 그랬고 언제고 이 이야기를 부담 없이 꺼내는 것을 그리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돈'은 우리가 걱정할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제의 청빈과도 관계 없는 이야기이며 교우들의 신앙심과 관계된 것도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우리를 'O원짜리 신자'라고 부르는 이야기도 돌지만 한국의 가톨릭은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들에 비해 부유하지는 않은 편입니다. 열심히 해서 대형 성당이 지어지는 일들도 있지만 어느 교구든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경쟁적으로 이런 건축을 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가진 지역교회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교회의 헌금은 교회의 유지비를 부담하는 '교무금', 그리고 교회이 유지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금', 그리고 '미사 예물'로 나뉩니다. 이들은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내는 교회를 각자의 정성으로 유지하기 위함이고, 그 교회의 이름으로 가난한 교회를 지원하고 가난한 이와 어려움 속의 이들을 위해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미사 지향은 사제의 기도와 함께 하느님께 정성을 드리고 세상 많은 곳에서 사목하는 사제들을 위해 사용됩니다.


그래서 이 헌금은 하느님이 돌려주신다는 약속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성을 바치면 하느님이 감동하시어 보상을 주신다는 약속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말이지만 그것을 약속할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어서 그것을 말한다고 해서 불가능할 리도 없고 또 그 이야기를 하는 이가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질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오히려 분명히 하느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급자족에서 벗어나면서 화폐를 만들어냈고, 그것으로 많은 것들이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원래의 목적을 넘어 세상의 질서를 만드는 힘으로 변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의 가치를 가장 가깝게 느끼는 것으로 이용된 것도 역사가 보여주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교우들의 헌금과 교무금으로만 살아가는 교회를 이루는 것. 모두가 알지만 그것을 경험한 적은 없기에 시도가 위험해보이고 돈을 남기지 못하는 성직자, 아니 돈을 쓰기만 하는 성직자가 될 위험을 안고 살아옵니다.


그래서 오늘 교우들에게 청했습니다. 생활비 좀 올려달라고 교우들에게 청하고 원도 없이 '돈 얘기'를 했습니다. 교우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의 의미를 알고 나온 결과라면 어떻게라도 그것에 맞춰 살아보려 합니다.

교우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오늘 복음의 헌금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돈을 주인삼는 세상이라면 그리스도인의 돈 조차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록 근본에 대한 이야기와 바른 실천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