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독수리 떼 아래 있는 이들에게.../정호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19. 11. 19. 16:39

독수리 떼 아래 있는 이들에게...



1999년 마지막 날. TV에서 중계되는 화면에 흰 옷을 입은 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고 이 중계의 이유는 '종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해주시리라 오랜동안 이야기하며 하늘로 들어 올려질 '휴거'를 준비했습니다. 성경을 읽었고 그 성경에 그려진 대로 자신들 스스로 흰옷을 입어서 그 날의 주인공이 되려 했습니다.


심판의 징조도 느낌도 없었으나 그들은 달력과 시간을 종말의 끝으로 맞추고는 사람들을 한 순간에 구원에 탈락한 실패한 나락으로 몰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오랜시간을 구원을 믿으며 자신들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 후로 몇번이고 같은 일들이 있었으나 세상은 여지껏 무사하고 구원을 약속받고 기다리는 이들의 지루한 기다림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원을 약속한 이들은 하나 둘 씩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고 죽지 않을 거라 했던 이들도 죽음을 통해 자신들의 후계자들에게 심판의 권한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수시로 바뀌는 이들의 놀라운 계시에 따라 지도자를 옮겨가며 구원을 기다립니다. 그들은 모두 성경을 그렇게 읽고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른다는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그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계산해 낸 능력자들의 성경에 없는 해석을 믿으며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삶은 어디있을까요? 그들의 인격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우리의 구원을 약속하신 하느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오직 구원만을 향해 식음을 전폐한 이들을 어떻게 보실까요? 그들이 구원과 맞바꾸려 한 사랑이라는 것이 하느님께 어떤 가치인지 생각은 해 보았을까요?


독수리는 썩은 시체들 위로 납니다. 그곳은 하느님이 데려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 죽음의 잿더미 안에서 어서 걸어 나오기를 바랍니다. 혹시나 싶어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있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