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정호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19. 11. 19. 16:51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가난은 많은 이들에게 미움을 받는 말입니다. 가난은 많은 이를 죄로 내 모는 말이며, 그 자체가 죄가 되는 일도 많은 단어입니다. 가난한 이는 마치 생명이 없는 것처럼 사람을 만들어 일방적으로 단죄 받고, 동정 당하며 사람의 귀함을 잃어버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을 싫어합니다. 모두가 벗어나려 애를 쓰고 누군가는 가난하지 않은 삶이 하느님의 축복된 삶이라 생각하고 희망하며 그것으로 더 나은 삶을 향해 더욱 이기적인 선택을 하곤 합니다.


교회도 이런 가난을 싫어합니다. 교회는 같은 이유로 가난을 없애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무수한 사랑 중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사람을 죄인으로 내 몰고 마는 이런 가난 속에서 사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가난 속에 있는 사람을 동정이 아닌 존중으로 일으키고 그들이 더 이상 그 틀 안에서 죄를 짓지 않도록 또 죄인으로 내 몰리지 않도록 모든 것을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적 선행이든, 사회적 활동이든, 정치적 행동이든 그 모든 것에 첫번째 가치가 되어야 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사람을 가난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난한 이의 집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하느님 안에서는 누구도 가난하지 않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포용의 정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동등함을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 가난은 끼니를 굶는 가난이 아닌 스스로를 마비시키는 욕심과 개인으로 향하는 가치들을 차단시키고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더 이상 가지려 하지 않는 선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가난을 선택하고 가난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가진 것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부자여도 높은 사람이어도 상관 없습니다. 그도 우리도 사람의 최소한의 존중에 동의하고 손을 내미는 것으로 우리는 동일한 일을 하는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가지려 하지 않는 가난으로 가지지 못한 이들을 가난에서 구해내는 우리가 되었는지 한 해를 잘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