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평신도의 날에 성직자의 자리에서/정호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19. 11. 19. 16:15

평신도의 날에 성직자의 자리에서



평신도의 날. 아직 본당에 사목협의회가 없는지라 평신도 대표에게 강론대를 내어 줄 수 없어서 평협에서 보내온 동영상을 틀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한 주 쉬어가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어려워 하는 이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서 강론대에 매일 서는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되는 듯 싶습니다.


그럼에도 복음묵상을 하려 앉은 자리에서 동영상들을 보게 됩니다. 거기에는 한 평신도가 나와서 그것도 학교의 교장 선생님 출신의 한 평신도가 교구별 사제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본당 교우들에게 이 사제를 본당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천주교의 대표라고 집회에 나와 교회의 사탄이 있다며 다른 종교인들 앞에 사과를 하는 영상도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그들은 교회도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같은 말을 적용하기에 천주교는 원래 민주적이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교회를 떠난 개신교가 왜 협의방식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처음부터 바꾸려 했는지를 안다면 이미 아는 내용이겠지만 민주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그 속에서 정의를 밝히는 사제들이라 하더라도 성직자가 교회 안에서 위치는 정의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밝히고 백성들의 맨 앞에서 그 길을 지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직자와 평신도가 한 길을 걷는 것이 가톨릭 교회 입니다.


공동합의성을 말하고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과 가치가 강조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누군가가 말했다는 "교회의 주인이 평신도"라는 과감한 발언은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모두 하느님 아래에 살기 때문에 이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각자이자 모두라고 말할 지언정 '누구의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대립과 대결, 또 협의에 대한 논쟁이 활발한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근본을 의심하거나 흔드는 것은 혁명적인 것도 발전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 논쟁이 가져오는 것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하느님의 뜻인지 생각해보면 분명해질 것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존재지만 누군가에게 이 교회에서 쫓아내야 할 운명의 길 위에 놓인 사제의 평신도 주일의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