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오늘과 미래

松竹/김철이 2018. 6. 25. 16:11

오늘과 미래

 

                                      김철이



 


 매일 반복해서 우리 곁에 머물러주는 "오늘"이란 단어는 마치 싱그러운 물방울을 머금은 꽃잎처럼 풋풋하고 생동감 넘치는 삶의 의지를 안겨줄 것이다. 마치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달게 마시는 몇 모금의 시원한 샘물 같은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라는 대자연의 섭리가 어둠이라는 커튼을 걷어 올리는 은혜에 힘입어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고 오늘 안에 수행할 일과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하루살이 생을 설계하는 사람의 모습은 거센 눈보라와 거친 비바람을 동반한 숱한 역경을 몸소 이겨내고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야생화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럽다. 오늘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축복이기에 오늘이란 단어를 부여받는 사람의 가슴엔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절로 자생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늘을 축복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오늘 또한, 어제와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같을 것으로 지레짐작하며 기본적 생의 생동감마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늘 변화 없는 일상생활 속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미련이나 바람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매일 반복되는 삶에 몸도 마음도 지쳐갈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오늘"은 결코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매일 반복해서 주어지는 24시간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어 오늘은 덧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이미 흘러가 버린 지난 세월 속 시간처럼 쓸쓸한 여운의 그림자 되어 일상생활 삶 속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반면에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이지만 매일 주어지는 24시간을 세상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오늘은 "오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미래로 옮겨가는 길목이라 여기며 매일 접하는 오늘에 더없이 깊은 감사를 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이 아무리 고단하고 괴로운 일들로 발목을 잡는다 해도 그 사슬에 매여 결코 주눅이 들지 않고 해가 지고 해가 뜨면 또다시 맞이할 오늘을 영혼 속에 보배처럼 소중히 간직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등지고는 결코 생활할 수 없고 평생을 동고동락하는 부부처럼 세상을 떠나지 않고는 한순간도 헤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인 생각의 잣대와 저울로 달고 재어 묶인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지혜와 용기와 인내가 우리 사람들에겐 절실히 필요로 하니까 무심한 오늘이 나를 외면하며 자꾸만 떠밀어내려 해도 모습도 표정도 없이 잘난 체만 하는 "오늘"을 사랑하는 연인의 몸을 어루만지듯 애틋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 밝은 내일이란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래를 꿈꾼다는 그 사실조차 그림의 떡과 같다는 것이고 또 오늘 현실에 부정적인 사람에게 오늘이란 시간은 희망의 눈길을 쉽게 배려하지 않을 것이다.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차버린다는 속담에 걸맞게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저 숨만 고르게 잘 쉬고 있어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해서 찾아주는 오늘에 코가 땅에 닿도록 절하며 감사해도 부족할 판국에 그다지도 천대를 하고 구박하기를 일삼았으니 오늘과 일심동체 한 몸인 미래와 희망이 찾아줄 리 만무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세계 70억 인구 중에 평생을 살면서 성공한 인생도 많고 실패한 인생도 많지만, 인생을 성공한 사람 중에 “오늘”이란 존재에 소홀히 대접했던 사람이 없고 인생을 실패한 사람 중에 “오늘”이란 존재를 업신여기고 천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유년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사람 중에 부지런함과 게으름 두 가지 분류의 두 사람이 있는데 부지런한 사람은 평소 일상생활이 정확한 눈금의 자로 잰듯하였고 매일 아침잠만 깨면 잠자리에 누운 채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그 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떠올려 나아가며 한 가지 일을 떠올릴 때마다 거듭 찾아주는 “오늘”이란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었다. 게으른 사람은 매일 반복해서 부여되는 “오늘”이 눈만 떴다. 감으면 당연히 자신의 일상생활 테두리에 놓여있어야 하는 존재로 치부해 버린 채 “오늘”에 대한 손톱만 한 감사의 마음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분류의 인생이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극 격한 격차를 보이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고 두 사람 중에 누가 성공한 인생을 살았고 누가 실패한 인생을 살았는지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 한일이 아니겠는가? 이른 아침 눈만 뜨면 거듭 자신의 삶 속에 먼저 자리 잡고 양반다리로 앉아있는 “오늘”에 감사의 큰절부터 올린 다음 하루를 쟁여나갔던 이는 “오늘”이란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을 자생시켜 길러가며 매일 주어지는 하루살이 인생을 백 년 인생을 사는 듯 매사에 감사하며 매사를 정확하고 부지런하게 임하며 성실한 삶을 추구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하늘도 돕는 듯이 하는 일마다 순풍에 돛단 듯이 하나 막힘없이 술술 잘 풀려 나아갔으며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에 걸맞게 마흔 후반기에 들어 만인이 부러워하는 사회적 직위까지 올라 명성을 떨치다 인생 말년에는 귀농하여 평생 수족 노릇을 해주었던 아내와 대자연 벗하여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두 번 못사는 인생 편하게 즐기자는 주의로 평생을 살았고 “오늘”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는커녕 매사에 나태하고 게으른 인생을 추구했던 이는 만사를 접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 팔짱을 낀 채 앞장서고 나서니 잘 풀릴 일도 헝클어진 얼레의 연줄처럼 죄다 꼬이는건 정한이 치이고 덕분에 슬하에 딸린 식솔들마저 평생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고생이란 단어가 무색해서 천리만리 달아날 정도로 크나큰 고생만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는 젊은 시절 고생은 꿔서도 한다는 속담과는 정반대로 인생 말년엔 하루 세 끼니마저 걱정해야 할 신세로 전락해 버렸고 산 입에 거미줄은 칠 수가 없으니 남편은 손수레로 골목을 전전하며 폐지를 주었고 남편 잘 섬긴 덕분에 아내는 재래시장 한 귀퉁이 난전에 목판을 놓고 몇 마리 안 되는 생선을 팔아 건건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분류의 인생이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은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이나 크게 자리 잡을 것이지만, 이 교훈이야말로 우리가 조상 대대로 귀에 못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것이고 가슴에 새겨도 골 천 번은 아로새겨야 할 터인데 머리로는 실행에 옮겨지건만 가슴으로는 실천에 옮기기 별천지 같으니 정녕 모를 건 백 년을 같은 모습, 같은 표정으로 거듭 반복해서 살아갈 “오늘”의 정의와 평생 더불어 살아가며 정답도 오답도 없는 인생살이 정의가 하루살이라 하겠다. 하루를 잘 살면 일 년을 잘살 수 있고 일 년을 잘살면 평생도 잘살 수 있으니까…

 


 "오늘"의 소중함과 인생 소중함의 정의를 분명하게 내려준 이가 있으니 그는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사무엘 존슨이다. 존슨은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서 더욱 짧아진다." 라고 세상 누구의 삶에도 큰 본보기로 남을 명언을 남겼는데 이 명언의 의미는 매일 반복해서 부여되는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산다고 해도 하루뿐인 "오늘"을 늘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살라는 것이다. 잘생겼건 못생겼건 세상 누구에게나 늘 공평하게 부여되는 삶의 원칙이 바로 "오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