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현대판 삼천갑자동방삭의 청춘

松竹/김철이 2018. 5. 3. 15:06

현대판 삼천갑자동방삭의 청춘


                                                                 김철이

 

  흔히 빨리 가는 세월을 가르쳐 유수와 같다고 하는데 요사이 이 속설이 날아와 매순간 가슴에 꽂히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불로초를 삶아 먹었는지 마냥 철부지 어린 아이 동심으로 살줄만 여겼는데 머리위엔 이미 생의 희로애락과 시시비비가 진눈깨비가 되어 내린지 오래 이고 터주 대감이 제 자리를 차지한 듯이 이마엔 잔주름이 점차 늘기 시작하니 먼 옛 시절 서로 입에 들어가는 밥알도 꺼내먹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故 천상병 선배님의 인생역설(人生力說)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다지도 쉬 떠나시려 그랬는지 모를 일이지만, 귀천(歸天),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등의 작품과 작품집에서는 외로움과 인생무상이 자연스레 묻어났다.  

 

 그 시절 그는 문학도로서는 철부지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나에게 “인생은 누구라도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해 봐야 청춘은 늙고 매일 반복해서 떠나가는 하루도 붙잡지 못하는데 뭘 그리도 아옹다옹하는지 모르겠네, 난, 그 시간에 탁배기 한 잔 더 마셔두겠네! 저승사자가 날 데려갈 때 가지 않으려고 애써 버티지 않기 위해서 말이야.”라는 인생 교훈을 자주 새겨주셨다. 인생 피라미, 문학 피라미 같았던 나는 그런 말이 듣기 싫었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가 인생 패배자, 인생 도피자로 여겨질 때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인생 육십 줄에 들어서고 보니 그의 인생역설이 역병처럼 나의 사지를 온통 지배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잘 났거나 못났거나 잘 살았거나 못살았거나 모름지기 자식들 인생과 청춘은 죄다 부모의 살과 혼을 파먹고 자란 것이기에 부모의 삶과 끼를 닮아 살아왔고 늙어가는 것 같다. 제 어미 몸의 살을 온통 다 파먹고 나니 껍질만 남아 가벼운 나머지 논물에 동동 떠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와! 우리 엄마 시집간다.” 라고 좋아했다던 설화속의 우렁이 세끼의 인생과 청춘을 살아온 나의 청춘 파노라마는 크게 사등분으로 나누어졌다.  

 

 수많은 근심 · 걱정 죄다 저 멀리 던져버리고 쇠똥 구르는 모양만 보아도 깔깔대며 배를 부둥켜안고 웃으며 사흘을 굶어도 배고프지 않을 만큼 좋아했던 철부지 악동들과 어깨동무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새싹 같은 청춘이 있었기에 사내로서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었고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어 천하에 둘도 드물 불의와 싸우며 빈민층을 위해 살신성인할 만큼의 배포 큰 청춘을 살았던 문학도의 시절도 있었기에 분명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거센 파도가 몰아치던 바닷가에 애정의 모래성을 쌓던 아픔이 지금 이 시점 차라리 보배로운 존재로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부모님 날 낳아주시고 뼈와 살을 물려주시지 않았다면 존재도 없을 나의 영혼, 나의 육신이었을 텐데 세상 천지에 나밖에 없었고 나밖에 몰랐던 한 때의 내 청춘도 있었기에 신을 포함하여 부모님을 비롯해서 주변의 모든 이에게 속죄하는 의미로 가장 보편적이고 서민적인 가톨릭 신앙을 가져 아무리 나의 죄가 진홍빛 같다 손치더라도 나의 처지에서 신께 속죄 제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전무후무했던 터라 죽지 않을 만큼 먹고 자며 하루 열 시간이 넘는 시간을 제대 앞에 꼼짝하지 않고 꿇어앉아 유간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신께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한편 나의 희생과 나의 봉사가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사람과 사람 사이 주고받았던 마음과 육신의 상처로 병들고 멍이 든 이들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시절의 청춘도 살았었고 나 자신이 중증의 장애를 지녔기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힘겹게 생활하는 중증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건 당연지사, 꼴뚜기 심정은 꼴뚜기가 가장 잘 알고 고슴도치 심정은 고슴도치가 가장 잘 알듯이 나 역시 불인동물인동 구분을 못 할 나이 때부터 지닌 채 생활해야 했었기에 비슷한 처지의 중증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해 보자는 한 지인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지만, 적지 않은 세월동안 봉사랍시고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네 발로 뛰었는데도 잘 해놓은 것은 온데간데없고 못 해놓은 것만 산더미 같았기에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불의를 보고는 한 순간도 보아 넘기지 못하는 성품을 타고 난 탓에 세상을 함께 바꾸어 나아가자는 손길을 차마 뿌리칠 수 없어 부산동래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직을 맡아 우리나라 국민에게 무딘 청력에 생소하게 느껴질 장애인인식개선과 동료상담, 권익옹호, 정보제공이라는 사대사업을 중심으로 언어와 행동이 어눌한 중증장애인들의 대변인 역할을 다 하려고 인생 육십 고개 청춘을 다 받쳐 전 세계 국가 중 꼴찌에서 맴도는 우리나라 복지정책과 피 터지게 쿠쟁하며 낮은 곳에서 갖은 차별과 냉대 속에 신음하는 낮은 자들을 위해 어눌한 목소리 쉬도록 높여가는 중이다.

  

  요사이 한간에 떠도는 속설을 인용하자면 인생 사십 고개를 넘고 있는 사람은 세월 흐름의 속도가 40킬로이고 인생 오십 고개를 넘고 있는 사람은 세월 흐름의 속도가 50킬로이며 인생 육십 고개를 넘고 있는 사람은 세월 흐름의 속도가 60킬로 빠르다는 것인데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세월의 흐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서 청춘은 한 조각 장미 빛 뺨이나 앵두 같은 입술의 얄팍하고 하늘거리는 교태가 아니라 강인하고 투철한 의지나 풍부한 상상력과 태산도 능히 태울 듯이 뜨겁고 불타는 열정적 표본이라는 것이다. 위 속설에 반기를 든다면 인생 칠십 고개를 넘는 사람은 세월 흐름의 속도가 70킬로, 인생 팔십 고개를 넘는 중인 사람은 80킬로의 세월 흐름 속에서 하루하루 시간가는 모양만 바라보며 인생 허무함만 곱씹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러한 계산법(計算法)중엔 어디엔가 오산(誤算)이 생긴 듯싶다. 내 어릴 적 햇살 따뜻한 겨울날이면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토담아래 얼굴엔 삶의 희로애락을 드러내듯 골이 넓은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인생의 무계를 견디다 못해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인지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이 꾸부정하게 쪼그리고 앉아 한숨을 내뱉듯 이구동성 주고받는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하이고! 이놈의 세월은 왜 이리도 더디 가는지 빨리 늙어 가야 할 길 빨리 가야 할 텐데” 위 속설과 그 시절 그 노인들의 한탄에서의 세월 흐름의 계산법 중 어느 것이 오산인지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건 그 시절 그 노인들에게도 청춘은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해서 청춘이란 오묘한 인생의 밑바닥에 깔린 옹달샘에서 우러나는 신선한 정신이고 세상 갖은 유약함과 사악함을 죄다 물리칠 수 있는 용기와 안이함과 나태함을 뿌리칠 수 있는 모험심이라 하겠다. 때로는 혈기 왕성한 이십 대 청년보다 인생 황혼길 문턱을 넘어선 육십을 넘긴 중년의 남녀에게 녹색 짙은 청춘 왕성한 경우도 종종 접하곤 하는데 인생 연륜을 많이 겪었다 해서 정녕 사람이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과 가치를 일어버렸을 적에 비로소 몸과 마음이 다 늙는 것이다. 세월과 순간은 우리 인생의 주름살을 한 골씩 늘게 하지만, 삶의 열정과 가치와 의무를 지닌 마음은 끝내 시들게 하지 못하는 것이고 평생 살면서 인생 고뇌와 공포와 실망스러운 일들을 겪었을 때 비로소 몸과 마음이 병들고 생을 다한 한 송이 꽃인 양 점차 시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육십 살이든 열 살이든 세상 모든 사람의 일곱 치 가슴 속엔 색다른 일을 접했을 때의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과 철부지 아이와 같은 미지세계를 향한 끝이 실종된 탐구심과 때때로 스쳐가는 삶속에서 환희와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의 불씨가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든 가슴속에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원의 세계에서 오는 힘을 생산해 내며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젊음과 청춘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영감이 끊어져 정신(精神)이 냉소(冷笑)와 같으며 비탄이란 얼음의 늪에 갇힌 사람은 비록 연령(年齡)이 이십 대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고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잘 탈 수 있는 한 세상을 살아온 인생 연륜(年輪)이 노쇠(老衰)한 팔십 대라 할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인 것이다. 하루해가 이미 서산에 저물어 갈 때 오히려 저녁연기와 노을이 더욱 아름답고 한해가 구세군 종소리에 저물어 갈 즈음에야 인생을 한층 더 소중하게 여기듯 세월 모양새의 향기도 더욱 향기로울 것이다. 사람도 인생의 황혼기에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 노년의 삶을 한청 더 멋진 청춘으로 가꾸어 마무리해야 하고 청춘은 이유도 없이 웃는 법이다. 바로 그것이 청춘의 가장 중요한 매력의 하나다. 라는 명언을 남긴 와일드의 인생 지론과 청춘이란 마음의 젊음이다. 신념과 희망에 넘치고 용기에 넘쳐 나날을 새롭게 활동하는 한 청춘은 영원히 그대의 것이리다. 라는 사무엘 울만의 인생사 명언을 가슴에 새겨 보아도 모름지기 모든 청춘은 소중하고 세상 그 어떤 삶의 청춘도 소홀히 여기거나 푸대접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난도님의 작품집 표지에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고 표기했는데 이 표지의 글귀처럼 한 평생 내 청춘도 많이 아파했고 많이 고뇌했었기에 하늘이 내게 주신 내 청춘과 젊음에게 용서를 청하며 하늘이 내게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기회를 주신다면 보람차고 아름다운 청춘을 살아보련만 이제 황혼기에 들어선 내 청춘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서산마루에 걸터앉은 여생의 향기를 짙게 풍겨보리라는 다짐을 거듭하며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만남과 헤어짐이 아픔이었던 내 인생 청춘은 이별의 예감 때문에 흔들릴지 모를 일이지만 육십 인생 고갯길 넘기 힘에 부쳐도 내 청춘을 우두커니 넘보는 늙음의 존재들을 영원한 청춘의 무덤에 고이 안장(安葬)하고 쉬 늙지 않은 청춘(靑春)의 동아줄을 부여잡아 현대판 삼천갑자동방삭의 삶을 살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