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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작 골목 이야기 제4화 아쉬움

松竹/김철이 2018. 4. 24. 14:20

연작 수필 5부작 골목 이야기 제4화

                    아쉬움

 

                                                                                   김철이

 

 봄이면 양지바른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옹기종기 쪼그리고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며 쓸 말 못 쓸 말 다 동원하여 수다를 늘어놓던 철부지 아이들의 웃음이 피어나던 곳, 여름이면 공습경보도 없이 무차별 난사하는 모기 편대의 기총소사를 피하려고 마른 잡풀 진 잡풀 뜯어 모아 섞어서 모깃불 피워놓고 널찍한 평상 깔고 앉아 부채질도 느긋하게 아버지들의 하루 피로를 털어내던 곳, 가을이면 아무도 몰래 가슴에 쌓아놓았던 서민들의 숱한 애환들이 참고 참다 마른 나뭇잎으로 떨어져 뒹굴듯 생애를 다 살고 떨어져 뽀얀 흙먼지와 어울려 제멋대로 뒹구는 낙엽을 쓸던 어머니의 고생이 늘려있는 곳, 겨울이면 기와집 처마 끝을 움켜잡고 거꾸로 키재기하는 고드름 따서 쥐고 그 옛날 전쟁터 장군 된 양 하늘을 찌르는 악동들의 호연지기가 살아 숨 쉬는 곳, 눈이 내리는 날이면 눈을 밥쌀 삼고 떡쌀 삼아 장래 현모양처의 꿈을 키우며 소녀의 순정을 담아놓은 곳, 이러한 정겨움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그곳이 골목인데 이들 골목마다 현대 개발의 바람이 불어 죄다 사라질 위기에 놓였으니 아쉬움을 금할 수 없어 있을 때 잘해. 라는 유행가 가사 가슴에 새겨 남은 골목이나마 필설 여행을 떠나려 한다.

 

 60~70년대 전형적인 달동네 골목길인 목포 온금동 그 정겨운 골목길의 풍경은 7080세대들에게는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20 ·30세대들에겐 왠지 낯선 공간이기도 하다. 1930년대에 세워진 조선내화 건물은 한동안 이곳 주민들의 애환 어린 장소였으나 지금은 폐건물로 남아 이곳을 개발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제공하고 있다. 서산·온금지구는 목포항의 관문이자 유달산과 더불어 한국의 나폴리를 지향하는 미항 목포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고의 여건을 갖추었지만, 개발에 따른 비용 부담과 유달산 조망권 등으로 사업을 처음 계획한 2002년부터 방향도 설정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표류해 오다 작년 말쯤부터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옛정이 그리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천근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 골목길은 2009년에 시행된 마을미술프로젝트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로 산복도로변을 중심으로 10점의 조형작품들이 설치되었고, 2010년에는 2차 마을 미술 프로젝트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가 이어지면서 6곳의 “집 프로젝트”와 6종의 「골목길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다. 감천2동은 재개발이 아닌 보존과 재생의 관점에서 “문화마을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이다. 주민과 전문 예술가들과 행정담당자들에 의해 구성된 협의체 방식을 통해 성공적인 창조도시 한 유형이 되고 있다. 감천동 문화마을은 전에는 태극도마을이라 부르기도 했다.

 

 부산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마을 골목길은 흔히 ‘그리스의 산토리니’에 비유하곤 하는데 레고블록 같은 집들은 모자이크되어 다채로운 빛깔을 내고, 절벽에 매달린 집들 사이로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최근 들어 키치적 미감에 이끌린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데, 이들이 선호하는 포토 포인트는 감천고개 정상 감정초등학교 주변이다. 태극도마을은 옥녀봉과 천마산이 감싼다. 아침에는 옥녀봉 아랫마을에 볕이 들고 저녁에는 천마산 아랫마을로 해가 떨어진다. 옥녀봉 아랫마을의 불규칙한 격자가 만들어내는 곡선이 사진가들이 탐내는 장면이다. 이곳 주민들이 ‘할배 산소’ 라고 부르는 태극도 교주의 무덤에서 솔밭3길 계단으로 진입된다는 것이다.

 

 네 갈래 골목인 광주읍성 옛길이 우리 추억의 길을 한 갈래 더 열어놓는데 코끝 찡한 겨울 행여 추울까 봐 손을 마주 잡는 사람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얼굴을 맞댄 키 작은 우리네 집이 있는 구불구불한 골목이 정겹다.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도심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풍경, 이 맛을 맛본 이가 있었을까? 최근 사람들의 눈과 마음이 모두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옆집 담장 너머로 활짝 핀 동백꽃, 햇볕에 내놓은 빨래, 길가의 고양이 녀석이 이들의 카메라 속에 담긴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아 만나게 될 낯선 혹은 낯익은 풍경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퉁이 저편엔 오늘도 어김없이 골목이 새겨놓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곳, 빛을 사랑한 서양화가 오지호 철기시대의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신창동, 의재 허백련 선생 등 우리 광주의 과거를 보는 건축물, 유물과 광주를 대표하는 예술인을 만나는 의미 있는 통로였다. 

 

 광주읍성의 서문(광리문)은 그 옛날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던 문이며 남문(진남문)은 지금 한창 아시아문화전당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자리다. 이렇듯 오늘날 광주의 심장부이기도 한 금남로 일대는 오랜 옛날 돌을 쌓아 만든 성이 존재했었던 역사의 또 다른 근거지다지금은 현대 개발의 뒷심에 밀려 사라진 광주읍성의 옛 모습을 상상하고 읍성 복원에 대한 작은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도 하고 직접 손을 움직여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읍성복원에 대해서는 ‘읍성 옛길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박물관에 읍성에 관한 기록을 전시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복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전남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에 있는 조금나루 유달산 아래 목포 앞바다가 바라보이는 목포 온금동 달동네를 소개하자면 목포 온금동(溫錦洞)은 한자 이름 그대로 따뜻한 햇볕으로 비단같이 아름다운 동네로 우리말로는 다순구미라고 한다. 진도 조도, 완도 노화도, 신안 암태도에 살던 뱃사람들이 목포가 도회지로 성장하기 전부터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았다. 목포항에서 섬들이 가장 먼저 바라보이는 유달산 아래에서 목포의 주인으로 들어와 일가를 이루고 살다가 남자들은 삶의 터전인 바다로 나가고 아낙네들은 그물을 짜고 지금은 굴뚝만 뎅그러니 남은 조선내화 공장에서 벽돌을 찍으며 생활하였다고 한다. 흉어 때는 고기잡이, 배를 못 타서 집에서 지내던 뱃사람들이 그 시기에 아이들을 왕창 출산하여 낳은 아이들을 조금 새끼라고 불렀다는데 그 말의 어원도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온금동 마을 입구엔 지금의 유달산 일주도로 대신 째보선창이라 해서 ㄷ자형의 어선 정박지가 있고 구불구불 골목길을 걸어올라 몬당에 올라서면 보리마당이라는 고개가 있다고 하며 보리마당에 있던 봉수터를 관리하던 둔전병들이 생활하던 초소가 있었고 뒤로는 유달산 앞으로는 서산동, 온금동이 보이고 눈을 더 멀리하면 목포 앞바다는 물론이요 멀리 해남 화원반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 온금동과 서산동의 오랜 역사가 이제 재개발 붐에 밀려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골목 이야기들이 장차 누구의 입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해질지 모르지만, 전해주는 사람도 전해 듣는 사람도 한 점 아쉬움이 남지 않게 그 모습 그 역할 변형 없이 전해주길 바라며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골목마다 골목 주인들의 혼과 얼을 뿌리 깊이 심었으면 좋겠다. 이 땅 위에 골목이 죄다 사라진 뒤 한 점 아쉬움 남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