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도
김철이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줄곧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가며 평생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 존재가 사람이 됐건 세상 뭇 인간의 행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며 사람들에게 갖은 복을 내린다고 돼 있는 신앙 속에 등장하는 신들이 됐건 사람은 평생 자신보다 지닌 능력이 조금이라도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의 대상에게 기대고 싶어 하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 속 인생고개를 넘다 보면 가파른 언덕길을 무거운 짐이 실린 수레를 밀고 올라가듯 힘겹고 지칠 때가 있을 터, 사람은 그럴 때마다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절대자에게 의지하고 빌고 싶어 하며 가슴에 묻힌 소망을 끄집어내놓으며 문제 된 일들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농담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생명을 지닌 존재 중에 이러한 행위를 가장 잘하는 무리가 곤충의 한 종류인 파리가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세상 산책을 하던 신(神)의 눈에 빌고 있는 파리가 눈에 띄어 하루도 변함없이 같은 모습으로 빌고 또 비는 파리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소원이 그리도 많아 어떤 신에게 그렇게 빌고 있느냐?” 그 말을 들은 파리의 대답은 엉뚱했다. “저는 세상 어느 신께도 빌지 않고 오로지 저 자신에게 빌 뿐입니다.” “너 자신에게?” “예! 저처럼 힘없고 나약한 존재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순간마다 위험이 따르는데 그때마다 신께 도와달라 빌어야 하고 신의 응답을 기다려야 하니 신의 응답이 제게 도달할 때까지 제가 무사할 거란 보장이 없잖아요.” “그럴 바엔 차라리 저 자신에게 체면을 걸며 소망을 비는 게 났겠죠.” 그렇다. 미물에 불과한 파리도 하루살이 생을 자신에게 맡길 줄 아는데 같은 하루살이 생을 살아내야 하고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이 자신의 코앞에 당면한 과제를 다른 이의 뜻에 맡겨서야 하겠는가? 이러하듯 2015년 을미년 양띠해 새해를 맞은 우리의 하루살이 생을 우리 자신에게 체면을 걸어 행복을 길이 누리는 오늘로 살았으면 좋겠다.
한평생 삶의 여정을 걷다 보면 온종일 궂은 날도 있을 것이고 눈부시게 화창한 날들도 있을 것인데 비 내리는 날이면 우산 하나 씌워줄 사람, 비 개 햇볕 화창한 날이면 따가운 햇살 가려주며 양산 하나 받쳐줄 사람 곁에 두고 변덕스러운 자신을 잘 다독여 늘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평정된 삶 속에서 바로 전날 궂은일들로 마음이 상했어도 좋은 일만 기억하며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고 자기 자신에게 체면을 걸어 항상 바보 웃음 입가에 걸어놓고 하루를 기쁘게 지낼 수 있는 오늘로 살았으면 좋겠다.
자갈돌 와글대는 해변에 삶의 둥지를 틀어 비가 내리는 날엔 빗물에 젖고 바람 부는 날엔 바람에 실려 삶의 여유를 누려보려 했으나 밀물과 썰물처럼 매 순간 밀려들고 밀려나는 인생의 희로애락 탓에 어지러운 청룡열차를 탄 듯 멀미와 구토를 반복하며 하루살이 인생조차 못내 버거워 빈 지게처럼 벗어버리고 싶은 심정 태산 같은데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좀체 줄지 않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줄어들 줄 모르는 숱한 경쟁 속에 지친 영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가운데서도 사람의 향내와 인간미 제대로 물씬 풍기는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오렌지 속살처럼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오늘로 살았으면 좋겠다.
계절의 여왕 오월에 장미가 온 계절을 점령한 가운데 자기 영역 오롯이 지키려는 듯이 특유의 향기를 꽃잎마다 묻혀 뿜어내는데 삶의 무덤이 어디에 존재하고 삶의 천국과 지옥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루 저녁 서산마루 노을과 같은 인생살이 남들보다 더더욱 멋지게 살고 싶은데 마부도 고삐도 없는 세상 미친 말은 예측불허 꺼지지 않는 불산에 날 올려놓으니 아옹다옹 삶의 무게에 부딪기며 한세상 살아낼 나의 영혼은 삶의 돌파구를 찾아 헤매는데 애써 향수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삶의 배려가 묻어날 만큼 은은한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오늘로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살이 모름지기 물이 되라 하셨던 선인들 말씀에 따라 논두렁 허수아비 누더기 걸쳐입은 가난한 마음으로 살려 했건만 세상 수레바퀴 혼자서 도는 게 아니라 포대기 두르지 않고 날 업어 자장가 고이 불러 달래주니 꿈인 듯 생시인 듯 세상살이 비몽사몽 물도 흐르고 세월도 흐르는 법, 삶의 그릇에 담아보려 하니 알갱이는 온데 간대 흔적도 없고 가슴속 갖은 욕심 영혼 속 강을 도둑이 담을 넘듯 소리 없이 범람하니 흐르지 않아도 썩지 않는 산골짜기 깊은 옹달샘에 고인 맑은 물 같은 오늘로 살았으면 좋겠다.
세상 숱한 인연들이 놓은 손 잡고 잡은 손 놓아가며 이어놓은 인생의 만남 속에 사심의 뿌리가 돋아나고 욕심의 가지가 철철이 뻗어가 듯 하루살이 삶의 꽃밭에 화려한 화심을 꺾어 그곳에 청빈의 나무가 뿌리를 내리게 하여 탐스러운 청빈의 열매를 이 땅의 모든 만남에 하나 빠짐없이 쥐여주며 오늘과 내일의 공간 속에 형성되는 수입과 지출은 죄다 인생 여정의 뒷켠으로 미뤄둔 채 역사와 역사가 이어놓는 오작교 건너가며 아무런 계산 없이 좋은 사람 만났다고 미소 가득 즐거워할 수 있는 오늘로 살았으면 좋겠다.
행과 불행은 사촌지간인데 세상 숱한 사람들 하나같이 행복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불행의 불씨는 지쳐 꺼지든 말든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홀로 된 불행은 허허벌판 두 다리 뻗어놓고 억지라도 부리려는 듯이 불행의 씨앗들이 삶의 텃밭을 무성하게 점령하고 나의 인생 여정에 씨름판의 모든 다리기술로 걸어 넘어뜨릴 걸림돌이 되어도 길을 걷다 누가 퍼질러 쌌는지 몰라도 행길에 얌전히 눌러앉은 푸른 물똥을 밟아 뒤로 길게 넘어져 뒤통수가 터져도 분하고 억울할 판에 원칙에 걸맞지 않게 잘 생기지 못한 코를 야무지게 깨뜨렸어도 역시 난 행운아야 하고 말하며 어깨에 힘을 더할 수 있는 오늘로 살았으면 좋겠다.
세계 칠십만 인구를 대상으로 속임수 경련 대회를 연다면 그들 중에 과연 어느 누가 대상을 차지할까?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대상 후보자로 가장 유력한 사람은 민족의 역사,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피를 나눈 부모 형제를 속이고 우롱했던 북한의 김일성 삼 부자일 것인데 이유는 하나, 북한 내 김일성 일가 세습 승계를 위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건 물론이고 김정일과 김정은 세대에 내려와서는 권력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전 세계의 눈과 귀를 딴 곳으로 돌리는가 하면 같은 아버지 슬하 피를 나눈 이복형제들까지도 제거의 대상으로 여기며 속고 속였으니 말이다. 그런 세상 굴레 속에 우리도 함께 살고 있으니 속고 속이는 각박한 세상 틈바구니에서도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거나 짜증 나지 않고 해맑은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오늘로 살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날 속여도 성내지 않고 웃어넘기며 독백 속 나를 향해 행복했다 잘했어라고 자와 자찬할 수 있는 오늘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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