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기’는 사랑을 갈망하는 우리 마음의 정원이며
외로움이 열매 맺는 곳이다.
끝없는 일로 지친 몸과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찬 마음을
위한 쉼터다. 홀로 있을 물리적 공간이 있든 없든
‘홀로 있기’는 영성생활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곳에 머물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너무도 두렵고 불안해
곧바로 자신을 흡족하게 하는 무엇이 나타나면 쉽게 흔들리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홀로 있기’는 즉각적 만족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홀로 있으면서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악마를 만나고
탐욕과 분노를 느끼며, 인정이나 칭찬을 받고 싶은 강한 욕구와 대면한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고 버티면 “겁내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너를
이끌어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가리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을 만날 것이다.
‘홀로 있기’로 돌아가고 돌아가라.
-「살며 춤추며」에서
우리는 단독자單獨自로 하느님 앞에 섭니다.
그러기에 단독자는 ‘홀로 있는 자’, 즉 ‘홀로 서기’한 자로
자아를 실현하는 자입니다.
‘너’와 ‘나’의 ‘인격적인 만남’은 결국 ‘홀로인 너’와
‘홀로인 나’가 만나야 ‘참 자아인 너’와 ‘참 자아인 나’가 만나
너와 내가 하나 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거짓 자아와 거짓 자아가 만나면 거짓 사랑이 되는 것이며
‘나I’가 ‘너you’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나I’와 ‘너you’의
만남은 ‘그것it’과 ‘그것it’의 만남이 되어 비인격적이며, 마치 ‘그것’과
‘그것’이 만나는 현상은 사물과 사물의 부딛침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차마 ‘만남’이라 할 수조차 없습니다.(마틴 부버의 「너와 나」 참조)
부끄럽지만 그런 의미를 지닌 저의 졸저 시집
「홀로 가는 나그네」 중에서 한 편을 소개합니다.
홀로 가는 나그네
호젓한 길을
홀로 가는 나그네
가녀린 코스모스처럼
가을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며
황혼녘 노을 속으로
홀로 걸어 간다.
참으로 홀로이기 위해서
홀로 가는 나그네
함께 있어도
홀로와 홀로가 아니면
너와 내가 만날 수 없는 것
홀로와 홀로가 모여서
우리가 되고
홀로가 홀로를 짝으로 맞으면
하나를 이루어 홀로가 되고
비로소 사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