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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동글이의 세상 여행기 제1화 야무진 결심

松竹/김철이 2015. 5. 8. 14:07

물방울 동글이의 세상 여행기

- 제1화 야무진 결심 -

                                               김철이

 

 옥수처럼 맑고 한 점 티 없이 깨끗한 물의 나라인 수나라 임금님이신 둥글이 임금님의 슬하에 동글이라는 이름을 지닌 늦둥이 물방울 왕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물방울 왕자 동글이에겐 여태 이루지 못한 소원 하나가 마음속 깊숙이 숨겨져 있었어요. 동글이의 소원은 뭇 생명이 한데 어울려 생활하는 더없이 너른 세상을 두루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물의 나라 수나라의 관례 중 어린 물방울들을 커다란 웅덩이에 모아 그들 나름대로 지켜야 할 도리와 의무를 교육시킨 다음 때가 되면 차례차례 아래로 흘려보내는 관례가 있었어요. 그래서 물의 나라 수나라 아래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이 먹고 마실 수 있을 갖은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몸을 깨끗하게 씻거나 생활하는 주위를 말끔히 청소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아래로 흘려보는데 동글이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차례도 멀었던 탓에 소원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동글이의 생각으론 자기의 판단도 올바르고 몸도 매우 잘았으니 그토록 보고 싶은 세상구경을 하라고 흘려보내 줘도 될 것 같은데 어른들은 자기 마음을 도무지 몰라주니 무척이나 속상하고 섭섭했어요. 해서 늘 입이 툭 튀어나온 채 어른들 말씀에도 잘 따르지 않고 불만과 심통이 가득 찬 생활을 해오던 동글이는 몇 번을 엄마 아빠를 번갈아가며 조르기도 했고 떼를 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모두가 헛일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해 새봄이 찾아온 날이었어요. 동글이는 혼자 야무진 결심이자 큰 모험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엄마 아빠는 물론 다른 어른들 몰래 물방울들이 일심동체 한 몸이 된 채 생활해야 하는 커다란 웅덩이를 몰래 빠져나가 더없이 너른 세상을 빠짐없이 두루 구경하며 자기와 전혀 다른 모습과 표정의 수많은 생명체를 만나 그들은 어떤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이었어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호시탐탐 기회만 보던 동글이는 추운 겨울의 혹한에서 막 벗어나 새봄으로 가는 시절의 길목에 놓여 봄의 기후 탓에 모두 나른하고 어수선한 틈을 타서 갖가지 생김새의 냇물과 개울로 흘러나가 자기들의 본분을 다하러 가는 다른 물방울들의 사이에 몰래 끼여 그렇게도 소망했던 세상구경을 나아가게 된 것이었어요. 동글이는 태어나 지금껏 엄마 아빠의 깊은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생활했으므로 다른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없진 않았지만 자기가 자라온 환경과 전혀 다른 모양의 세계를 눈에다 채워넣고 가슴속에 새겨넣을 수 있다는 기쁨 하나로 다른 생각들은 뒤로 밀려난 채 동글이의 기억 속에 더는 머물지 못했어요. 

 

 살이 예의는 듯한 추위에 꽁꽁 묶여 온 겨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었던 물방울들은 얼음에서 풀려난 기쁨과 자유로움에 신이 난 듯 서로 어깨를 걸고 걸어 어깨동무를 한 채 한없이 긴 줄을 지어 아래로 흘러갔어요. 물론 그 틈바구니엔 엄마 아빠 몰래 물의 나라 웅덩이를 탈출한 동글이도 숨어있었고요.

 

 끝없는 물길을 따라서 흘러가다 보니 동글이의 눈에 들어온 세상은 동글이가 생활해온 세상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눈이 부셔 뜰 수가 없었어요. 세상 갖은 생명체들의 손길과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보고 접해온 세상에서 볼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던 대자연의 모습에 동글이의 입에선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어요. 화사하고 아리따운 갖가지 꽃들, 허공을 자유로이 날며 먹이를 쪼는 새들, 숨도 차지 않은 듯이 깊고 넓은 강과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 산과 들에서 탄생하여 갖가지 생명체의 먹이가 되어주는 곡식과 채소들이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모습과 표정에 동글이는 비록 엄마 아빠의 말씀도 따르지 않고 부모님의 깊으신 뜻을 어겨가며 수나라를 몰래 빠져나오긴 했지만, 세상구경을 하기로 했던 자신의 결정에 큰 박수를 보냈어요.

 

 아래로 흘러갈수록 낯선 모습들이 높고 낮은 산과 들, 그리고 물이 흐르는 냇가나 계곡의 언저리에 아름답고 화려하게 느껴졌던 동글이는 가는 곳마다 환희에 찬 탄성을 금할 수가 없었어요. 온갖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곳에선 동글이와 같은 물방울들이 늘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고 어떤 생명체든지 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동글이와 같은 물방울들이 한 방울 두 방울 모여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과 자신과 같은 물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한두 방울의 물이 한데 모이면 얼마나 크고 위력적인 힘을 지니게 되는지도 절실히 깨닫게 되었어요.

 

 동글이는 이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그냥 무심히 흘려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글이는 물의 나라 수나라 웅덩이에서 함께 나와 무작정 흘러가던 물방울 형제들과 떨어져 흘러가는 동안 더 많은 생명체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며 더 많은 추억을 새겨야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함께 흘러가던 물의 대열에서 뒤로 처져 천천히 흘러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지금껏 함께 흘러온 형제들과도 이별하게 되었어요.

 

“형님들! 난 곧 뒤따라 갈 테니 형님들 한 걸음 먼저 앞서 가세요.”

“왜? 너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그렇지 않아도 고향에서 나올 때 엄마 아빠 몰래 나와놓고는”

“동글이 넌 뒷일도 걱정 안 되니”

“아빠 엄마 걱정도 안 되고... 고향엘 빨리 가고 싶은 마음도 안드니 넌?”

“아무 걱정하지 마. 아무런 탈 없이 무사히 돌아갈 테니 우리 고향에서 다시 만나요.”

 

 형제들과 헤어져 혼자 어느 개골창 언저리에서 이제 막 깨어나 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봄 나라 해님과 달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길고 먼 여행을 하는 동안 밤과 낮을 늘 따라다니고 어두울 땐 환히 밝은 빛으로 어둠을 밝혀주고 추울 땐 따뜻한 햇볕으로 따뜻하게 덥혀 주시라고 간청하였어요.

 

“아이 따뜻해라! 햇볕이 참 따뜻하기도 하구나”
“어느새 새봄이 찾아오시려나 보다”
“해님! 해님! 저랑 봄맞이 가시지 않을래요…?”
“안돼! 난 이 자리에서 새봄이 제 역할을 쉽게 찾아올 수 있게 도와줘야 해”
“달님! 달님! 새봄이 찾아오려 하니 저랑 함께 봄맞이 가실까요…?”
“나도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단다.”
“해님과 함께 낮과 밤을 번갈아 돌리며 세상을 꾸려 나가는데”

내가 자리를 비우면 해님 혼자 힘들지 않겠니…?”
“그럼 하는 수 없군요. 저 혼자라도 다녀올게요.”
“그래 혼자 다녀와.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해하지만,

세상 구경 두루 많이 하고 잘 다녀와

“그럼 저 혼자 다녀올 테니 추울 땐 따뜻한 햇볕 내려 춥지 않게 해 주시고”

“어두울 땐 밝고 환한 빛을 내려 어둡지 않게 환히 밝혀주실래요.”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렴. 우린 늘 네 등 뒤에서 따라갈 테니”

 

 동글이는 해님과 달님의 아쉬운 배웅을 받으며 난생처음 새봄맞이를 겸해서 시원한 그늘을 찾아 세상 여행을 떠났어요. 처음으로 하는 여행이라 조금은 두렵고 겁도 났지만, 물줄기를 따라 흘러내려 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갖가지 모습과 풍경들이 마냥 새롭고 신기하여 다른 생각들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한참을 졸졸졸 흘러가다 보니 눈앞에 작은 물고기들이 갖가지 모습과 다양한 색깔들로 올망졸망 모여 꼬리를 살랑되며 나름대로 신 나게 헤엄을 치고 있었어요.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