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묻혀가는 한국의 모습들 (둘) 그 누가 찾아줄까?
아무리 시대 흐름에 따라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강대국들의 얄팍한 시대적 계산에 따라 그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었고 우리 민족사에 치욕적 오점을 남긴 바 있는 6, 25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불발의 전쟁이었다. 동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야만 했던 이 전쟁 때문에 어느 민족 어느 나라가 얼마나 큰 이득을 봤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민족의 가슴에 해묵은 한이 되어버린 이 전쟁의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국민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할 말은 있을 테지 도포 자락 치마폭에 숨은 채 양반 상놈 놀음으로 세월을 보내던 민족을 귀 열고 눈뜨게 해 주었는데 은혜를 갚지 못할망정 무슨 놈의 어불성설(語不成說)이냐고 말이다. 개구쟁이 철부지 아이들 땅따먹기 하는 것도 아니고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삼팔선 하나 그어놓고 남과 북이 밤, 낮, 주야로 눈을 부릅뜬 채 넘어오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엄포를 앞세워 하늘이 맺어준 혈육의 정마저 무참히 끊어 놓은 이 전쟁은 지금까지도 지속하고 있지만, 6, 25전쟁이 발발한 이후로 조상 대대로 고구마와 옥수수에 길들어 있던 우리나라 국민의 입맛은 동물원 동물들에게 재미삼아 던져주듯 동심에 건네주던 코 큰 서양인들의 초콜릿 단맛과 후진국 국민이 선진국 잘 사는 사람들이 갖은 생색 다 내며 나누어주던 밀가루 맛에 점차 길들어가고 있었다.
앞일은 생각해 보지도 아니하고 당장 좋은 것만 취한다는 뜻으로 우선 먹기는 가감이 달다는 속담처럼 우리 민족의 입맛을 점차 앗아가기 시작한 이러한 일들이 먼 훗날 우리나라 국민의 입맛을 좌지우지하게 될 밀가루 역사를 쓰게 될 줄이야 누구 하나 꿈엔들 짐작했으리. 코 큰 외국군인들 군화 소리를 따라 들어온 왜래 문화는 모습도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우리 민족의 영혼을 쉴 새 없이 파고들었고 이 모양을 쉬 흉내 내 보려는 어리석은 민족은 곧바로 불량 식품 시대의 막을 올렸다. 이 불량 식품 시대의 슬하에 자녀로 손꼽을 수 있는 것으로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것은 달고 나였는데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얄팍한 상술에 넘어간 개구쟁이 꼬마들과 한참 가슴속에 호기심이 용솟음칠 또래인 초등학생들이 하굣길에 둥글게 진을 친 채 쪼그리고 앉아 설탕과 소다를 적당히 섞어 녹인 물이 굳기 전에 갖가지 모양 틀로 모양을 찍어주면 고사리 손과 누런 콧물을 아무렇게나 문질러대던 손으로 달고나 장수가 찍어준 모양에 손상이 가지 않게 조심스레 테두리를 떼든 진지했던 그 모습이 눈앞에 아롱거린다. 어쩌다 달고나 모양을 온전히 재현해낸 아이는 큰 행운을 손에 쥔 듯 기뻐 날뛰던 그 순수한 모습과 함께 백 원에 네 개를 사 먹었던 신호등을 나타낸 네거리 사탕과 휘파람 사탕이 있었는데 네거리 사탕은 무엇을 첨가하여 만들었는지 잘 녹지 않아 반나절 먹어도 호주머니 속에 남아 있던 기억과 휘파람을 불기엔 아직 어린아이들이 휘파람 사탕을 입에 넣어 능숙하게 휘파람을 불며 골목을 누비던 기억이 추억의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군것질 거리가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 동심의 입맛을 충동질하기에 충분했던 불량과자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폴로이다. 우주를 정복하려는 강대국 중 하나인 미국의 우주선 로켓 아폴로가 우주를 향한 야심을 품을 때쯤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상술이 아폴로라는 선진국형 이름표를 붙여 만들어 냈던 불량 과자가 아폴로인데 아폴로는 긴 종이 스토롱 속에 달고 약간 진득하고 걸쭉한 액체가 들어 있어 철부지 아이들은 맛도 맛이지만, 호기심에 이 불량 과자를 즐겨 찾았던 것 같다. 이뿐이었겠는가 순박한 동심을 파고든 상술은 테이프처럼 돌돌 말아져 있는데, 풀면서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세상에 찌들지 않은 동심의 입맛을 유혹하기 충분했었고 한참 뛰어놀 아이들의 한순간 배고픔을 달래줄 라면 땅은 또 다른 밀가루 역사를 백의민족 가슴에 아로새겨 갔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 국민만큼 추억거리가 많은 민족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철부지 어린 시절부터 하나가 있어도 둘로 나누며 생활하시던 부모님의 생활습관이 절로 몸의 밴덕이겠지만, 때론 지나친 장난도 웃어넘길 수 있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생활했던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 예사로 행했던 추억거리 중 갖가지 서리가 많지만, 개중에 으뜸은 스릴 넘쳤던 닭서리가 아니었나 싶다. “꼬꼬댁! 꼭…” 녹슨 철삿줄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마당 뒤쪽 닭장 안으로 동네 악동들의 시커먼 손이 허공을 가르면 비좁은 공간에서 무엇인가 잡으려는 손짓과 잡히지 않으려는 닭장 속 닭들의 몸부림이 깊은 야밤의 정적을 깬다. 이어 멍멍이의 우짖는 소리가 버거운 농사일로 곯아떨어진 농부의 단잠을 설치게 했으며 “후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닭울음은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 밖에도 여름철엔 수박 서리와 참외 서리가 성행했었는데 짙은 야밤에 하는 서리인지라 천지분간조차 어려운 악동들의 고무신 발아래 참외와 수박의 줄기가 밟히기 일쑤였다. 넝쿨 과일은 줄기가 생명줄인데 철부지 악동들이 예사로 밟아버린 과일 줄기 탓에 한 시절 농사를 망칠 지경에 이르러도 누구를 탓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새삼 그리워진다. “등이 휠 정도로 무거운 삶의 무게여”라는 옛 가요의 노랫말처럼 추억이란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의 동반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나라 국민의 등에서 영원히 내려놓을 수 없을 추억거리가 있는데, 그것은 지게다. 지게는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 농사꾼엔 굴레이자 멍에였다. 농경시대 한가운데 버티고 있던 이 생활 도수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60년대 이전까지만 하여도 최상의 운반수단 도구로 군림하였다. 몸으로 때워야 했던 그 시절에는 가족들의 생계를 등에 져야 했던 성인 남성에 있어 아내보다 등을 대는 시간이 더 많았고 생계를 걸머진 가정의 분신이었다. 하루가 눈뜨기 무섭게 두부 목판을 지게에 얹어 애환 깊은 종소리와 함께 골목골목마다 누볐던 두부장수가 그러했고 현시대와 달리 화학비료와 각종 농약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논밭의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농민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배출해야 하는 두 가지 요소를 처리해 주겠다고 인근 도심지 주민에게 사정해야만 했던 그 시절엔 똥장군의 오물을 지게에 실어 나르던 농심이 그러했으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갖은 아니꼬움과 멸시를 뒤로하고 몇 푼의 돈을 벌자고 무거운 짐을 든 뭇사람의 짐꾼을 자청하여 지게에 무거운 짐을 얹었는지 본인 삶의 무게를 업었는지 모를 가난한 지게꾼의 애환이 그러했다.
“궁하면 통한다.”라는 속담처럼 돌아보면 뭐든 부족했고 또 돌아보면 뭐든 모자랐던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찌는 듯한 여름을 나는 모습도 지금 이 시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색달랐다. 과학문명의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시대였으니 우리 국민 손으로 만들어 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서민층 가정에 에어컨을 들여놓는다는 일은 꿈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고 구슬땀이 소나기처럼 흘러내려도 한순간 더위를 시켜줄 선풍기조차 가뭄에 콩 나듯 접할 수 있었던 터라 불볕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에는 우물 속이나 물이 든 양동이 속에 수박을 담가뒀다가 온 가족이 마루에 둘러앉아 나누어 먹으며 한순간 더위를 잊었으며 열대야와 얄미운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무더운 여름밤엔 마른 풀을 태워 모기를 쫓는 모깃불을 신 장로 모퉁이에 피워놓고 길가에 나무 평상이나 나무 걸상을 펴놓은 채 옹기종기 모여앉아 어설픈 부채질로 한사코 달겨드는 모기를 쫓던 이웃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밤하늘에 피어오르던 그런 시절을 돌이켜 살 순 없을는지… 인간들의 무분별한 건설과 파괴로 산과 들은 산 채 허리가 잘려나가 비명 소리 더 높은데 오존층은 파괴되어 지구가 온난화되어 가는 이 시점에 못 먹고 못 살았지만, 유난히도 추웠던 동지섣달 기나 긴 밤, 밤새 방안에 떠놓았던 자리끼 위에 살얼음이 얼던 그 시절이 사뭇 그리워진다.
'松竹♡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띠 해에 들어보는 말들의 이야기/제1부/사람과 말의 연(緣) (0) | 2014.01.27 |
---|---|
추억속으로 묻혀가는 한국의 모습들 (셋) 그리운 옛 동산 (0) | 2013.06.19 |
추억 속으로 묻혀가는 한국의 모습들 연작 (하나)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0) | 2013.04.16 |
추억의 소리들 (0) | 2013.03.27 |
옛정 (0) | 2013.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