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소리들
사람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추억(追憶)을 되새김질하며 살아가는 생명체이다. 질과 양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사는 현대인이라면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추억은 그림의 떡이고 어제가 오늘이 아니고 오늘이 결코 내일이 될 수 없는 모습의 세상에 살면서 추억은 무슨 말라 비틀어진 무말랭이 같은 소리냐며 핀잔을 주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을 테지만 누구나 한 생을 살면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기뻤던 기억 슬펐던 기억들을 절로 간직하며 살아간다. 세상 뭇 사람들은 이 숱한 기억들을 추억이라 이름 붙여 부르며 걸어온 인생을 뒷걸음쳐 되돌아보고 때로는 아침에 빈 지갑을 주운 것처럼 실없이 웃기도 하고 또는 가슴 아팠던 지난날의 상처가 덧나는 통증에 한순간 쓴웃음을 웃는다. 자주 떠올리기엔 행복과 기쁨보다는 아픔과 괴로움이 더 많았던 시절, 애잔함이 절로 묻어나는 그 소리, 한숨도 눈물도 통째 씹어 삼켜야만 했던 그 시절 그 소리를 찾아서 미로 속으로 사라져간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라 그 궁핍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학교 근처 거리를 배회하다 학교 종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운동장으로 뛰어들곤 했던 웃지 못할 그 실화를 과학문명의 시대에 살면서 부족함을 모르는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는지… 다 낡고 허름한 풍금 소리에 흥을 돋우며 인생을 배우고 미래를 배워가던 아이들 누가 이기고 누가 진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우리 학교 우리 반 동무이고 날만 밝으면 마주칠 내 동네 내 동무인 걸 그래도 뽀얀 흙먼지 마시며 1초라도 더 빨리 달려야 했고 단 1보라도 더 많이 당겨야 했으며 높다란 장대 위에 매달린 바구니 속에 한 개의 오자미라도 더 많이 던져 넣으려 했던 것은 숱한 외침의 아픔 속에 잃었던 게 너무 많아 다시는 잃고 빼앗기기 싫다는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남녀노소 가림없이 온 동네잔치가 되었던 그 가을 운동회 악쓰는 소리가 그리움으로 남는 건 왜일까…? 낡고 찌그러진 양은그릇이 없어도 다 낡은 고무신이 없어도 말만 잘하면 엿판 통째 온 동네 아이들의 손에 던져주곤 하던 인심 후한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내 것 네 것이 분명해진 이 불행한 시대에 몸 붙여 살아야 하는 우리의 가슴에 교훈의 훈장님으로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 밤새 어수선한 가을바람에 어지럽혀진 마당을 청소하시며 싸리비로 낙엽 쓰는 소리와 함께 어울리던 아버지 잔기침 소리를 못내 잊을 수 없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가슴마저 시리게 했던 혹한도 이겨내고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를 일 벗을 삼아 한 귀퉁이 얼음을 깨고 개울가에서 빨래하시던 어머니 겨울 물 방망이질 소리가 시린 손 호호 불며 집에 가자 조르던 철부지 아들의 기억 속에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 숨 쉰다. 저녁나절 더욱 바빠진 어머니 손길을 따라 덩달아 급해진 다듬이질 소리가 아직도 효도 못한 자식의 마음을 저리게 하지만, 박쥐처럼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낙수 소리는 개인주의로 삭막해진 이 시대에 사는 얼어붙은 영혼들 가슴을 절로 녹인다. 철부지 어린 시절, 모처럼 노는 날을 맞아 낚시질 가시는 아버지 따라 좁고 미끄러운 바위 위에 앉아 불안함을 못내 떨치지 못하던 아이의 귓전에 몽돌 파도에 휩쓸리는 소리는 한순간 위안이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실소(失笑)가 그치질 않지만, 그땐 왜 그리 두렵고 무서웠던지 부모님 곁에 계셔도 천둥 치는 소리만 들리는 날이면 무서워 눈물 콧물 다 흘리며 한여름 삼복더위에도 두꺼운 목화 솜이불 속으로 숨어들곤 했던 그 추억이 한 해의 여름을 맞이할 이 시점을 풍요롭게 한다.
이유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지만 오십여 년 전 매일 정오만 되면 열두 시를 알리는 정오 사이렌이 들려오곤 했었는데 이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시계가 귀했던 시절이라 배꼽 시계만큼 정확한 것이 없었던 철부지 아이들은 엄마의 옷소매를 이끌며 점심밥을 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군것질거리가 변변치 못했던 시절의 아이들이라 엄마가 차려 내놓은 밥상 위에 통째 올려져 있던 대나무 밥 소쿠리 속 찬밥 덩이로 허기진 배속을 달래던 기억이 새삼 마음을 애잔케 한다. 더듬더듬 겨울 밤거리를 헤쳐 나아가며 칠흑 속에서 파랗게 일었던 맹인 안마사 피리 소리는 개구쟁이들 짓궂은 장난 덕에 구멍 난 창호지 틈새를 비집고 몰래 숨어든 황소바람 탓에 코마저 시려 깍지를 껴야 했을 우리 가슴에 한순간 위안이 되었을 게다. 흐르던 강물이 은빛으로 정지하고 화려하기만 했던 산골짜기도 소복으로 갈아입어 상상의 그 모습을 잃어갈 때 가난했던 시절의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고 태엽 풀린 괘종시계가 뎅 뎅 열 시를 알린 후 빠른 걸음으로 열한 시를 훌쩍 넘어서면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조바심을 더욱 부채질하였고 찢어진 창호지 속으로 저며 들던 겨울 칼바람은 전쟁에 패한 패잔병처럼 살점을 마구 헤집어 놓았고 패잔 국의 잔해라도 되는 듯이 삼십육 년 동안 약소국이었던 한 나라 민족의 밤을 암흑 속에 구속시켰던 통금 사이렌 소리는 깊은 밤 더욱 깊은 잠에 빠지게 하였다. 야밤을 지킨다는 핑계로 밤길을 제 마음대로 누비던 야경꾼 딱딱이 소리는 도둑을 좇는 것인지 좀도둑을 보호했던 것인지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가 지나가고 나면 좀도둑의 손버릇은 더욱 기성을 부렸다. 가까운 듯 멀리서인 듯 “메밀묵 사려! 찹쌀떡!” 깊어가는 야밤을 외치는 고학생들의 애소가 못 먹고 못 살던 시대에 살던 이들의 마음을 애인케 하였다. 파는 이도 사는 이도 처량한 신세를 애수 어린 심사를 그렇게 슬픈 단조에 실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이 못내 잊을 수 없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던 탓일까 가난과 아픔이 뼈마디 마디마디마다 사무쳐 차마 울 수도 없었던 시절이라 갓난애가 강보에 쌓여 있듯 망개잎에 포근히 쌓여 있던 망개떡을 팔던 망개떡 장수의 조용하고 운치 있던 그 목소리는 옷소매로도 닦아내지 못할 혹한을 잠시 닦아내 주었다.
무식할 정도로 우람하게 생긴 덩치에 시커먼 연기를 마구 내뿜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무정한 기차의 기적 소리는 중년 후반 연배에 놓인 이들은 잊고 싶어도 좀체 잊혀지지 않는 소리로 영혼 한 켠에 멍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다. 6, 25 동난 그 아비규환 속에서 부모, 형제와의 피맺힌 이별의 통곡과 자식을 전선으로 보내야만 하는 부모님의 절규를 뒤로 따돌린 채 매정하게 달려가던 그 소리는 다시금 떠올리기 싫은 민족의 아픔이라 하겠다. 한 시대 대중교통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앞뒤 없는 전차 소리는 당시 한 철부지 아이의 기억 속에 할아버지의 잔기침 소리와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버스 여차장의 오라이 소리는 이웃집 누나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 듯하였지만, 한 편으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힘겨움이 절로 묻어나는 투정 섞인 음성으로도 들려와 어린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신작로 한가운데 원통을 놓고 올라서서 수신호로 교통정리 하던 교통순경 호루라기 소리는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이유는 그 당시 철없는 한 아이의 눈속에 들어온 교통순경의 모습은 세상 최고의 동경인물로 비쳤기 때문일 게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민족별 국가별로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있을 터, 우리나라에도 시대별로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있었다. 6, 25 전쟁 이후부터 소이 7080시대라 불린 청바지 통기타 시대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매일 아침을 깨우는 정겨운 소리가 있었으니 어찌 삭막하기 그지없고 따뜻한 정과 사람 사는 냄새가 실종된 이 시대에 하나의 소음딱지로 내려앉은 휴대용 확성기의 힘을 빌려 아침을 깨우는 소리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가난한 시대의 힘겨운 신음으로도 들릴 수 있겠지만, 그 시대 그 소리는 우리의 아침을 깨웠던 것이 아니라 깊은 단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던 우리의 밝아오는 미래와 희망을 흔들어 깨운 것일 게다. 그 소리는 새마을 운동 역군들의 기억 속에 잘 입력되지 않을 힘과 용기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지게에 손수 만든 두부 목판을 얹어지고 나오는 두부장수의 종소리가 있었고 1급수에 생존하는 재첩을 국으로 끓여 양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나오는 재첩국 장수 아지매의 애달픈 소리가 있었는가 하면 허기진 뱃속을 달래기 위해 염치불구하고 집집이 문전마다 구걸하던 걸인들의 각설이타령 소리가 사계의 아침을 장식하였으며 엇비슷한 시간이면 골목마다 헤매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 소리의 존재는 각가지 가정사와 사연들 탓에 구두통을 멘 채 이른 아침거리를 헤매야 했던 구두닦기 소년들의 “구두닦! 신 닦! 약칠 하수와!” 하며 고래고래 외치던 비명이었다고 표현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게다. 이 소리는 잘못 앓아 내려앉은 마맛자국처럼 우리 영혼 어느 한 켠엔 우두커니 자리 잡고 앉아 있을 테지 한평생 함께 살생의 동반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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