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석 삼년 밤낮을 울어도…

松竹/김철이 2013. 2. 27. 00:21

석 삼년 밤낮을 울어도…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에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땅에다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땅에다 묻는 것이 아니라 부모 가슴에다 묻는다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육신 죽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영영 잊지 못할 내 부모님의 묘(墓)를 죽어도 없어지지 않으며 이 광활한 우주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는 내 영혼 한가운데 썼다. 그래도 효를 생각할 줄 알고 효에 관심을 둔다는 자식들이 흔히 입에 올리는 단어이지만, 내겐 그런 단어들조차 사치스럽고 왠지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몇 마디 말로 포장하는 것 같아 입에 올리기도 귀로 듣기도 싫다. 내 부모님께서 강산이 다섯 번을 변하고도 넘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게 무작정 퍼부어 주신 헌신적인 사랑과 은혜를 어찌 몇 마디 말로만 내뱉을 수 있겠는가? 세상 부모 다 그렇듯 어느 부모가 슬하의 자식을 소홀히 여기겠느냐만, 부모님이 내게 향한 사랑은 특별나다기보다 유별난 것이었다. 이승과 저승의 삶이 구별되어 있고 삶의 모습과 표정이 다르기에 쌍지팡이를 집고 헤어지기 싫어 애써 몸부림쳐도 어차피 한번은 이별해야 하고 나 역시 그 영원한 이별에서 특혜를 얻지 못했음으로 천금을 주고 살 수 없고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부모님과의 사이에 놓인 이별의 강을 건넌지 석 삼 년, 그렇다 해도 부모님 모습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음이 현실이다. 헌데도 삼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내 가슴속 부모님은 그때 그 모습 그때 그 표정으로 나의 꿈길에서 사흘이 멀다 하고 만나뵙곤 한다. 살아생전 불효 말고는 드릴 게 없어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속죄의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천하의 이 불효자식이 무슨 애착이 남으셔서 하룻밤 풋사랑이 되고 말 텐데 미어지는 가슴을 쓸어안고 찾아오시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특히 살아생전 낮이나 밤이나 걱정이라야 한 가지 걱정이 못난 자식을 이승에 두고 어이 눈을 감을꼬 하셨던 어머니는 길흉사가 있을 때마다 시 오리도 더 되는 솔밭 길도 마다치 않고 달려와서 축하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신다. 해서 부질없는 줄 알면서 간혹 꿈속에서도 두 손 모아 애절하게 기도한다. 당면한 이 순간이 꿈이라면 깨지 말라고 이 애달픈 심정이야 천륜(天倫)과 효(孝)를 가슴에 새겨 되새김질할 줄 아는 세상 모든 자식이라면 모두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이미 저승의 객이 되신 부모님께서 나를 쉬 잊지 못하시듯 나 역시 부모님을 못내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까닭은 부모님 주셨던 사랑이 컸기 때문만 아닐 게다. 내 부모님은 몸도 성치 못한 아들자식이 가난하고 평탄치 못한 작가의 길을 걷고자 어릴 적 당차고 야무진 포부를 말했을 때 세상 여느 부모와 달리 장애를 지닌 아들이 난관에 부닥쳐 문학도의 길을 포기할까 젊은 시절 흘러간 옛 추억을 얘기하시며 간접 추억을 내 가슴속에 새겨주셨고 타고나신 쟁이의 혼과 꾼의 끼를 내 영혼 속 땅을 파고 묻어주셨으며 평소 생활 모습에서 인간미를 몸소 실천하여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께선 원로 가수 고 고복수 선생님과 고향 울산에 가수의 길을 가려 하시다 할아버님의 반대와 생활고로 중도에 포기하시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으나 예술가의 꿈을 버릴 수 없어 당대 장구의 일인자라는 칭호를 들을 만큼 장구에 침체하셨고 장구를 맛깔나게 잘 치셨다. 어디 장구뿐이었겠는가 꽹과리면 꽹과리 징이면 징 북이면 북 국악기라면 못다 루시는 악기가 없었을 정도였다. 타고난 그 꾼의 끼 탓에 어머니께서 적지 않은 고초를 겪으셨지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국내 최초로 국악기로 양악을 연주했던 탁월한 너름새였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 못지않게 예술가의 끼를 타고나셨던 분이셨다. 누구보다 노래를 좋아하셨고 병든 자식 탓에 가슴에 시퍼런 피멍이 들었고 간혹 친구분들과 어울려 탁주 몇 사발 들이키시는 날이면 세상 누구에게도 말 못할 한 덩어리를 몇 곡 노래곡조에 담아 눈물로 토해내곤 하셨다. 특히 어머니는 한복 입은 옷맵시가 뛰어났고 한국 고전 춤을 학처럼 너울너울 잘 추셨기에 간혹 몇 잔 술에 흥이 나실 때면 아버지께선 장구를 치시고 어머니께선 춤을 추셨는데 철부지 어린 눈에도 참 보기가 좋았었다. 또한, 어머니는 책읽기와 라디오 드라마 듣기를 무척 즐기셨는데 문학도의 길을 걷는 내가 어머니의 내면을 닳은 듯싶다. 비록 각박한 살림살이 꾸려나가시느라 늘 바쁜 생활 속에 쫓겨 사셨지만 내 부모님은 타고나신 본성이 사랑이 많고 정이 많고 예술가의 끼가 많고 누구보다 따뜻한 피와 가슴을 지니신 분들이셨다.

 

 나는 매 순간 늘 느낀다. 때로는 지나치게 정이 많고 눈물이 많아 조금만 슬픈 모습 안타까운 모습만 보아도 눈물이 절로 나서 부모님 살아생전 가끔 사내자식이 그렇게 정이 많고 눈물이 많아서야 각박하고 야박하기 그지없는 이 세상을 어찌 모질게 살아갈꼬 라며 걱정 섞인 타박을 주셨으나 이 본성은 부모님께로 받았던 유산 중 가장 감사하는 유산이자 부모님께서 살아생전 귀에 못 딱지가 앉도록 일러주셨던 그 인성의 길을 따라가는 중이다. 어떤 힘겨운 일이 밀물과 썰물처럼 흔들어 놓아도 나보다 가난한 이 나보다 힘이 부족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의 도리를 다하라시던 그 교훈 세상 끝날까지 가슴에 새겨 실천하며 살아갈 것을 부모님 영전에 굳게 약속 올린다.

 

 마치 고장 난 브레이크를 장착한 자동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듯 하루가 멀다고 변해가는 사업화 시대에 살면서 야박한 세상 살기 힘에 겨워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댄다면 굳이 나무랄 말이 없지만, 하늘 같고 땅과 같은 부모님 은혜를 갚기는커녕 부모님을 신다 버릴 헌 고무신보다 못하게 여기는 사람을 간혹 접할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내 부모님 살아생전 타일러 주셨던 옛말에 아버님 은혜를 갚자면 평생을 갚아도 나무하다 헝클어진 나뭇더미와 함께 지게에 아무렇게나 얹어 집으로 데려온 은혜조차 갚지 못하며 어머니 개울에 빨래하시다 한쪽 옆구리 아무렇게나 낀 채 개울 하나 건네준 은혜도 갚지 못한다 했거늘 호의호식 호강은 시켜 드리지 못하더라도 부모님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는 여기지 말아야겠다. 청춘은 바람과 같은 것, 먹물 같은 머리털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검겠는가 다름질한 것 같이 팽팽하고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벗과 탁배기 마시러 가는 날은 알아도 저승 가는 날은 모르는 법, 흑돌 같은 머리에 눈이 내리고 백옥같은 얼굴에 주름이 질 날이 코앞인데 몸소 자식들 앞서 인생의 참 길을 걸어가신 부모님의 길에 욕 먹이는 짓은 하지 말아야 자식 된 도리를 조금이라도 행하는 것이며 부모님 은혜에 작은 보답을 하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자식 된 자리에서 양심껏 세상을 떠나시는 분향소에 향이라도 한 개비 갈아 꽂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천하의 이 불효자식처럼 살 주시고 뼈주신 양친을 잃고도 부모님 분양소에 향 한 개비 갈아 꽂지 못해 석 삼 년 밤낮을 속울음을 울어도 한이 차지 않는 불효는 저지르지 말 것을 세상 모든 자식에게 부탁하고 싶다. 누구나 한번은 부모의 자리로 돌아감을 새겨 간직하며 마냥 고르게 해야 할 황혼길을 더럽히지도 어지럽히지도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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