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아무리 로켓을 타고 달나라 가는 시대라지만, 요즘 혼자만 느끼는 감정인지 몰라도 세월의 흐름이 총알과 같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동편 하늘에 먹물빛 어둠의 커튼이 절로 걷히고 또 하루가 시작되누나 하는 생각이 기억 속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해는 서편에 이불을 깐다. 올해 내 나이 겨우 5학년 7반인데 왜 이다지도 세월은 급행열차를 탄 듯 빨리 달아나는 걸까…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하는 가사의 옛노래가 절로 생각이 난다. 마음 놓고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한 인생인데 어느새 반평생이 훌쩍 지나가 버렸으니 아쉽기가 그지없다. 하루가 시작되고 온갖 생명이 감았던 눈을 뜨면 세상 갖가지 사물은 광활한 지구를 터전 삼아 제각기 모습과 색깔로 각자 맡은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며 살아가는데 이 모든 사물(事物)은 생존(生存)을 위해 기를 쓰며 아우성들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물은 생겨날 때가 있는가 하면 반드시 한번은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나, 잘났고 너, 잘났다 해도 이 세상엔 영원(永遠)한 것이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서로 밥이 되어주고 그 밥을 먹고사는 동, 식물 세계뿐 아니라 양심(良心)을 지녔고 오감(五感)을 지녔다 하는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인 인간들의 세계에서도 별다름이 없을 것이다. 내가 살려면 너는 죽어야 하고 내가 잘 되려면 너는 못돼야 하는 이런 괴상한 심리적 정신상태로 살아가는 요즘 현대인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들의 삶이 동, 식물들의 삶과 뭐 별다름이 있나 하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생각이 절로 든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만 하여도 굶주리고 허기진 아이들이 수두룩 하다던데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은 양심이란 두 글자는 전당포에 잡혔는지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마치 굶주린 도둑고양이처럼 부를 축적(蓄積)하려 혈안이 되는가 하면 내가 차고 난 복이고 내가 피땀 흘려 노력한 대가와 보상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데 너네가 무슨 참견이냐면 할 말을 없지만, 이 땅 위에 함께 태어난 일말의 정의로 허리춤에 찬 복주머니 조금만 넉넉하게 풀어 나보다 조금 못 한 처지에 놓인 이웃을 돌아봐 줬으면 하는 서운한 마음에 부자 나리들께 일침을 가하며 삼대 부자 없고 삼대 거지가 없다는 옛 속담을 잊었나 싶어 상기시켜 주려 한다. 요사이 TY 뉴스를 보더라도 이 속담이 실언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부자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번 돈 조금 나눠 쓰면 어때 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부자들도 이 세상엔 많다고 들은 바 있고 쥐불도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도 내 이웃과 나누지 못해 안달이 난 이들도 많다는 풍문을 얻어들은 바 있다.
삼천리금수강산((三千里錦繡江山)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것은 온 백성 두루두루 나누며 살라는 대자연 무언(無言)의 특별한 당부(當付)이자 지엄(至嚴)한 엄명(嚴命)일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대자연의 은혜로운 이 특혜를 제대로 나눈 적이 없는 것이 싶다. 우리 자신에게 내려진 우리의 복이자 우리의 몫이니 당연히 받아 누려야 한다는 삶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잠시 눈을 돌려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본다면 아프리카 같은 더운 나라에선 일 년 내내 폭염과 해충들의 피해로 괴로워하며 남극이나 북극처럼 추운 나라에선 극한 추위와 식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질 않은가,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국민이야 말로 얼마나 큰 천복(天福)을 받아 누리고 있음을 깨닫고 늘 감사하며 대자연 터전에서 얻었고 가진바 나눌 줄 아는 마음씨를 지니는 것이 정말 천복(天福)을 받은 나라의 국민이 아닐까…
세 계절을 보내고 이젠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세 계절을 지낸 우리의 삶과 몸가짐을 되돌려 생각해 보고 반성하고 넘어갈 점이 있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훗날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사계를 분리한다면 봄은 계절의 부활시기라 할 수 있다. 대부분 동, 식물들이 긴 동면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제각기 나름 되로의 향기와 멋을 선보이는 계절이다. 여름은 모든 동, 식물들이 원기 왕성하게 푸르러 커가는 시절이다. 가을은 모든 생명체가 초봄부터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삶의 결실을 보는 시기이다. 반면에 사계 중 끝자리에 놓인 겨울은 흔히 죽음의 계절이라 말한다. 그것은 살을 예이는 듯한 혹한 탓에 이 땅의 모든 동, 식물들은 몸을 절로 움츠리게 된다. 또한,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 일컫는 인간마저도 추운 혹한을 무서워 벌벌 떨어 제기는데, 크게 넓혀 사계를 인생에 비유할 수 있음이다. 봄은 인생의 유년기(幼年期)에 속한다. 봄은 메마른 땅과 나뭇가지를 모태(母胎) 삼아 새싹과 새순을 피워 제각기 꿈을 키워간다. 인생의 유년기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의 슬하에서 태어나 이제 막 돋아난 새순처럼 천진난만하게 먼 미래를 향해 꿈의 나래를 편다. 청년기(靑年期)는 한 인생의 도약기라 할 것이다. 광활한 세상 모두가 제 것인 양 겁없이 어떤 분야든 마냥 도전하고 싶은 생의 절정기다. 장년기(壯年期)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시기다. 장년기에 들어서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책임져야 하며 머지않아 다가올 생의 노년기를 대비하는 준비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년기(老年期)는 두 벌 아이가 되는 시기이자 한 번 왔다가 한 번은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생의 기로(岐路)에서 죽음을 생각해 보는 시기다. 옛말에 사람이 늙으면 두 벌 아이가 되며 그렇게 당당하고 의지 굳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그저 나약하고 겁이 많아져 간혹 어떤 이는 인간이라면 생에 한 번은 치러야 할 죽음의 길마저도 가기를 거부하며 다가오는 마지막이 무서워 벌벌 떤단다. 흔히들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막론하고 누구나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진담이나 농담으로 잘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사람이 인생을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잘살아야 한다는 것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인생이 아니라 삶 자체가 죽음의 길을 닦는 것이고 한평생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세상 진리이자 인생이 걸어가야 할 필수적 길인데 잘 살았건 못 살았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냉정(冷靜)하고 초연(超然)해지는 이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아무리 한평생 인생을 잘 살았다 자부(自負)하는 사람이라 하여도 한두 가지 잘못은 있을 터이고 아무리 온유하고 따뜻한 심성(心性)을 지닌 이라 하여도 한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터이기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겨울에 사시나무 떨듯 겁을 먹어 떤다는 것이다. 죽음의 계절이라 할 수 있는 겨울의 문턱에서 어떻게 하면 인생을 보람되고 그 누가 보아도 잘못 살았다고 손가락질 받지 않으며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의연(依然)하게 대처할 것인가를 떠올려 생각하며 내 걸어온 인생길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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