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心)의 옥살이
세상 인간사에서는 부러울 것이 하나 없을 정도로 재물이 많고 그 재물로 사들인 인맥(人脈)이 많은 어느 백만장자가 어느 날 무척 오랜만의 술자리에서 죽마고우(竹馬故友)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세상 어느 갑부도 권력자도 부러워할 만큼 부를 축적했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앞으로 얼마든지 수많은 재물을 모을 수도 있고 그 돈으로 세상 어떤 권세도 살 수 있는데 삶의 곳간에 재물이 쌓여가는 만큼 자신의 마음은 공허(空虛)해지며 허탈(虛脫)감마저 감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백만장자의 친구는 댓 뜸 “자네! 여태 살면서 남의 손을 몇 번이나 잡아주었는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사업을 하다 보면 좋아도 잡을 수 있고 싫어도 잡을 수 있는 게 사람의 손이잖나.” “그런 뜻이 아니라 자선의 손을 얼마나 잡아봤느냐는 말이지.” “미안하네! 세상 바삐 사느라 자선은 아직 해보지 못했다네” “그렇다면 자선의 손을 한번 잡아보게 아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네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허와 허탈감이 흐르는 물에 씻겨 내려가듯 말끔히 사라질 테니 말일세.” “고맙네. 그렇게 해 보겠네.” 친구에게 자선을 해 보겠노라 말끝을 흐리고 코가 빠져 집으로 돌아온 백만장자는 서재에 홀로 앉아 곰곰이 생각하니 가난한 가문에 태어나 어린 시절 갖은 모진 고생 다 하며 자수성가(自手成家)를 이뤄냈던 기억들과 먹고 싶은 것 먹지않고 하고 싶은 일 하지 못하며 소와 개처럼 죽어라 일만 하던 나날들이 어제의 일처럼 되살아나 자선이란 단어는 가슴속에서 멀어져 가기만 했고 그 후 몇 달 되지 않아 백만장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끝에 자선의 손을 잡아보지도 못한 채 그리도 못 잊던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금쪽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어떤 경우 어떤 약속이든 반드시 지켜야 직성이 풀리는 A라는 한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는 그 성실하고 정확한 성품 덕분에 자신이 다니는 직장 동료뿐만 아니라 상사들까지도 자타가 인정해 주었고 빈틈없이 행하는 일상생활 덕에 중견 간부 직책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왠지 모르는 허무함이 자신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여 일상생활에 빈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 무단히 노력했었다. 그의 가슴엔 남들에게 쉬 털어놓을 수 없는 해묵은 상처가 딱지에 딱지가 앉고 그 의에 더 두꺼운 딱지가 앉아 있었다. 그의 부친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으름과 나태함 탓에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일생을 허송세월하며 갖은 도박으로 자신의 평생에 부여된 시간을 자신을 위해 자신이 아끼고 사랑해야 할 가족들을 위해 단 한 번도 뜻깊고 소중하게 사용해 보지 못했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부친의 그런 잘못된 생활습성 탓에 A는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고 그 멍이 불치의 병으로 자라 겹겹이 딱지가 앉았던 것이다. 해서 A는 자기 부친의 삶은 절대 닮지도 않을 것이며 배우지도 않을 것이라 자신의 양심을 걸고 굳은 맹세를 하였고 생활지표(生活指標)를 앞만 보고 달리자로 정한 뒤부터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가 숨이 차서 깔딱 깔딱 넘어가는 한이 있어도 외눈 하나 돌려 앞도 옆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고 없는 형체불멸의 정체이니 과거에 얽매여 자신의 살을 뜯어 먹으면서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아픔의 삶을 살지 말라던 주위의 충고를 어느 집 개가 짖느냐는 듯이 일축해 버리던 A는 비바람이 거세게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출근 시간에 늦을까 과속으로 자동차를 몰다 연습도 복습도 없는 생을 재미나게 한 번 살아보지 못한 채 저승(九泉)의 객(客)이 되고 말았다.
흉년이 들면 아이들은 배 터져 죽고 어른들은 배곯아 죽는다는 속설처럼 아무리 큰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도 생명과 재물을 지키기 위해 고생을 세 끼니 밥 먹듯이 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죽음과 삶의 기로를 서성이면서도 자기 생의 곳간을 어렵잖게 채워가는 사람도 있듯 갖은 욕심의 곳간을 비우지 못해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모질게도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다는 죄목으로 유년 시절부터 고생이란 단어가 부끄러워 달아날 정도로 수많은 고생을 했던 한 여성은 자기 평생 살아 소원은 양조장(釀造場)을 경영하는 것이고, 죽어 소원은 술독에 빠져 죽는 것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내였다. 그 말을 듣는 그녀 주위 사람들은 어디 궤변(改變)이 없어 그런 어처구니없는 궤변(改變)을 늘어놓느냐며 그녀를 마치 정신 옳잖은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평소 그녀의 생각과 생활은 세상 누구보다 반듯했었다. 뭇사람이 궤변이라 무시해 버리는 그녀의 말에도 세상 진리가 숨어 있었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양조장을 경영하게 되면 술은 마음껏 마실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숱한 세상 걱정근심은 잊게 될 것이며 고생스러워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 식칼을 들고 보니 무서워서 차마 생목숨을 끊지 못했다던 어느 인기가수의 말을 떠올리며 술독에 빠져 죽게 되면 자연히 마시기 싫어도 마음껏 술을 마실 것이고 그러다 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마저 잊게 될 것이 아니냐던 그녀의 소원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생활고에 방황하던 그녀가 친구가 경영하는 양조장으로 피신 갔다. 과하게 술을 마셨고 화장실에 간다며 나갔던 그녀는 2층 화장실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밑에 줄지어 놓여 있던 술독 중 공교롭게도 가장 큰 술독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위의 세 분류 사람들은 마음 심(心)이라는 단 한 글자를 버리지 못했고 마음 심(心)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탓에 욕심이란 죄목으로 갖은 욕심이 수갑이 되고 족쇄가 되어 영원한 심(心)의 옥살이를 살게 된 사람들이다. 애당초 신께서 세상을 지어내시고 이 땅의 수많은 사람을 지어내실 적에 신분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평등하게 더불어 살고 누구에게나 베풀며 살라는 뜻일 것인데 못 먹고 못 살던 시대에 태어나 많이 배우지 못한 탓에 남에게 베풀려 노력하던 시대를 뛰어넘어 엘리트 시대에 사는 현대인이라 일컫는 요즈음 현대인들의 일상생활을 눈여겨 살펴보면 베풀려는 자비의 마음은 눈곱만 하고 뺏으려는 욕심의 마음은 태산 같으니 무언의 언어로 세상을 지켜보는 신께선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소망한다면 세상 모든 이가 좀 더 비우고 좀 더 버리는 연습을 끊임없이 지속하여 심(心)의 옥살이에서 해방된 삶을 살았으면 한다. 나 역시 육신은 비록 병마에 묶여 자유를 잃었지만, 영혼만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 나를 죽이는 연습 무단히 하여 심(心)의 옥살이에서 기필코 풀려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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