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미래
일주일에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갖는 기도모임에 가는 날이라 바깥출입을 했었는데 갖가지 가을꽃이 차창을 내다보는 시선을 희롱하였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해 여름엔 글 쓰는데 밑바탕이 될 야외 스케치를 단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백 년 만에 최고의 무더위 그야말로 세상 뭇 생명을 손아귀에 넣어 푹푹 찌는 듯한 찜통더위 탓에 여름이면 가장 먼저 갖은 극성과 기성을 부릴 불청객 모기조차도 지쳤는지 전자모기향에 사입하여 사용하는 매트 한 통을 온 여름 동안 다 쓰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강골이라 소문난 나의 체력도 24시간 엄습해 오는 가마솥 같은 칠팔월 더위에 바닥이 났는지 건강에 비상이 걸려 두 달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다.
가는 시절이 아쉬워 뒷걸음이라도 치는 것일까 아직도 대낮엔 이마에 땀방울이 송얼송얼 맺히곤 한다. 가는 지역이 도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아직 덜 식은 열기 속에 다가오는 바람이 조금은 시원하게 느껴졌다.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무심코 차창 밖을 내다보니 그 찌는 듯한 폭염을 견디어 내고 어느새 길섶에 몇몇 가을꽃들이 제각기 자태를 뽐내며 피어 있었다. 가을의 화신 코스모스가 제철을 맞은 듯 뭇시선을 가냘픈 손짓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삭막한 도심지 조경을 위해 길가 화단에 심어놓은 꽃 중에는 멕시코의 화려함이라 칭송받는 달리아가 둥글고 정열적인 붉은 꽃잎으로 수많은 자동차의 경음과 소음 속에 퇴색된 화색을 뽐내고 있었다. 개중에는 남아프리카에서 타국으로 시집온 한란이 자국에 향한 애국심에 그리 화려하지 않은 고운 꽃잎으로 타향살이에 대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고 유럽이 원산지인 갯개미취가 애틋한 고향의 추억을 잊지 못한 듯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어설픈 잎의 유혹을 하였다. 또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도 아닌데 백주(白晝) 대낮에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온 호랑이 꽃이 허세를 부리며 피어 있었다. 그러나 꽃들에 대한 화려함의 호기심도 잠시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듯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시절이 바뀌니 꽃은 피웠으나 무슨 아픈 사연 있었기에 꽃잎의 색깔이 우중충할까… 아차 하는 순간에 생각은 바뀌었고 갖은 욕심들로 대자연을 죽여가는 세상 뭇인간들이 싫어졌다. 욕심이 없다면 신이지 인간인가라는 반문이 봇물처럼 쏟아질 테지만 굳이 책임을 묻고 따지자면 대자연이 오늘날처럼 망가지고 훼손된 것이 세상 사람들의 얄팍한 욕심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하찮은 풀 한 포기 물고기 한 마리라 하여도 생명은 존귀한 것이며 세상 뭇 생명이 태어나고 소멸하는 것은 생명의 주인인 대자연의 섬리가 아닌가 그런데도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사람들 욕심 탓에 세상 그 누구도 탓치해서는 안될 대자연을 더 잘 살아보고 싶고 더 편하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 산허리를 끊어 놓고 세월처럼 흘러가기만 하는 물줄기를 바꾸어 놓으니 참는 것도 한도가 있지 참다 참다 두 동강 난 산허리의 신음이 세상을 뒤덮고 강제로 돌려놓은 물길의 원한이 지상에 내리는 진노가 된 것이다. 제 계절을 찾아 절로 피는 야생화 한 송이만 보아도 알맞은 일조량(日照量) 적당한 비바람을 맞으며 피고 지는 것이 세상 진리인 것을… 개발이란 두 글자의 미명(微明)하에 둥굴고 공평하게 살다 오라시는 하늘의 지엄하신 천명(天命)조차 귀 밖으로 흘려버린 채 지구를 통째 삼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인간의 계산된 머리로 만들어냈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력으로 어찌 무한하기 그지없는 대자연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며칠 전 모 TY 방송에서 뜨거워지는 지구 탓에 북극의 얼음이 죄다 녹아 사라져가는 통에 북극곰이 얼음이 깨어질까 봐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해 허기가 진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했었다. 모성애가 강한 암곰이 새끼를 가져 놓을 날이 다 되어가는 듯 무척이나 동작이 느리다는 것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새끼를 가진 암곰이라 치고도 이상할 정도로 몸동작이 조심스럽고 무거워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자연의 천심을 알 리 없는 전 세계 뭇 인간들이 개발한답시고 무분별하게 지구를 파헤치고 훼손해 가며 기상(氣象)조차도 얄팍한 인력으로 제 안방에서 떡 주무르듯 해놓았으니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지구가 뜨거워지는 통에 이상기온으로 북극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자 얼음판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먹이를 구해야 할 북극곰들의 안식처가 줄어든 것이며 새끼를 가진 암곰도 배는 고파 죽을 지경인데 먹이를 구하려 큰 몸집을 이동하려니 얼음이 깨어 질까 봐 안절부절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개발 탓에 생존해야 할 삶터를 잃은 생명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만 보아도 개발의 도가 넘어 아무리 채우고 또 채워도 끝이 없는 인간들의 부질없는 갖은 욕심 때문에 귀가 먹고 눈이 멀어 갈 길 잃은 물줄기의 하소연도 허리 잘린 금수강산의 피 끓는 비명조차 듣지 못하고 있질 않은가… 지금 현재 대자연의 이 절규가 산과 들의 애원이 강과 바다의 처절한 부르짖음이 장차 다가올 미래 우리 인간의 몫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 누구도 감히 못 할 것이다. 어제가 옛날이라는 말도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여도 현재 부산광역시에서 최고의 번화가로 손꼽히는 시청이 위치한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에 거주했던 주민이 농담으로 주고받던 말 중에 연산동에 살려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속언이 신발도 신지 않고 제 마음대로 나돌아다니곤 했었다. 지금 시청과 법원이 위치한 그곳이 온통 논밭이었던 탓에 그 당시 연산동 주민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장화는 필수로 지녀야 했고 오죽했으면 연산동이 아니라 진산동이라는 웃지 못할 속언까지 주민 입질에 오르내리곤 했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사악하지 않고 욕심이 없으며 순수했던 주민의 마음씨 덕에 어느 집이건 몇 그루씩이나 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도로변에 텃밭을 일구어 고추, 상치, 옥수수 등을 심어 끼니때마다 즉석에서 따먹곤 하였다. 먹기 싫은 나이를 억지로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현대 문명의 편안함 속에서 편리한 생활을 누리면서도 조금 덜 편하고 손해를 보면서도 불만을 느끼지 못했던 그 시절 그 모습이 그리워진다. 너, 나, 할 것 없이 누런 콧물을 빼 문 코흘리개 고추 친구들과 부끄러움도 잊은 채 냇가에서 송사리 잡던 그 모습, 나무 총으로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며 욕심 없는 전쟁놀이하던 그 표정, 여름밤 몸이 성한 개구쟁이 친구들이 어둠을 뚫고 서리해온 옥수수를 모깃불에 구워먹으면서도 더없이 행복해했던 그 시절을 되돌릴 수만 있고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무런 계산 없이 돌아가고 싶은 심정 꿀떡 같다. 냇가의 버들치도 금개구리도 산과 들의 땅나리도 가시연꽃도 떠나간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서글픈 미래(未來)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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