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묻혀가는 한국의 모습들 연작 (하나)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사노라면 생의 동반자처럼 늘 함께 따르는 것이 좋은 일과 궂은 일이다. 인생의 과정에서 사람과 대자연,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라 꾸며지는 세상사 모양에서 숱하게 접하는 모습들을 가리켜 추억의 양식이라 하는데 이 수많은 모습 중 일부러 생각하여 떠올리지 않아도 가슴이 저리도록 그리운 모습이 있고 어떤 특정한 상처와 아픔 탓에 순간적이나마 떠올리기 싫은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해서 추억의 소리에 뒤이어 살다 보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추억, 떠올리기만 하여도 애잔하고 가슴 뭉클한 추억, 시시때때로 영혼의 문을 노크하여 고개 들이미는 추억의 근본 지를 찾아 더없이 편리하고 양과 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시대에 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 이 풍요로운 시대가 있기까지 밑거름이 돼주었던 시대의 모습을 적어보는 한편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해 주었던 시대에 고마움을 느껴보고자 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그 시대의 걸맞은 모습과 표정이 있기 마련인데 아물 하고 가난했던 시대의 아픔이자 우리 가슴 그 어느 곳엔가 오래되어 딱딱하게 굳은 딱지처럼 우두커니 눌러앉은 상처의 모습과 표정이 우리에게도 분명히 한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생계 잊기조차 힘이 부쳐 얼굴마다 삶의 희로애락 가득한데 철부지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아침이 눈뜨기 무섭게 고무줄놀이와 공놀이로 우정을 쌓던 여자아이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로 날 저무는 줄 모르던 남자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골목 안은 조용한 날이 드물었다. 그래도 낯가림을 하지 않던 그들은 그나마 동무들과 잘 어울려 놀았으나 부끄러움이 많고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들은 요즈음 아이들처럼 친구 집 초인종을 당당하게 누르고 함께 놀 동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친구네 집 담벼락을 배회하며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하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동무를 부르다 운 좋게 그 소리를 들은 동무의 가족이 “우리 철수 없는데” “우리 영희 심부름 갔는데”라는 대답이 담장 넘어 어렴풋이 들려올 때면 무슨 죄라도 지은 듯 불이 나게 달아났던 그 모습이 어른 뺨칠 정도로 똑똑하고 당돌한 이 시대 아이들에 비해 차라리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후진국일수록 각종 병균이 극성을 부리고 취약한 의료혜택 탓에 갖가지 질병으로 시달림을 받는 사람이 늘 수밖에 없다지만, 어느 한 시절 그 시절엔 왜 그렇게도 강원 경기지방의 방언으로 일명 흔디라 일컫던 종기가 마냥 뛰놀아야 할 동심의 여린 가슴을 멍들게 했던지 부스럼을 앓은 후유증으로 머리에 흉터가 사라지지 않는 탓에 철부지 동무들로부터 땜통이라는 놀림을 받곤 하였다. 이명래 고약이나 조 고약이란 상호는 현재 인생 황혼기에 놓인 이들의 기억 속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고약들과 때놓을 수 없는 존재가 그 시절 가정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던 유엔 성냥이라는 상호를 부친 채 매일같이 서민층과 동고동락했던 앙증맞은 화약 도토리가 있다. 시대도 날로 변화해 나아가고 좋은 시절을 맞아 약도 의술도 더 없이 발전된 시대에 살면서 이들이 쉬 잊혀지지 않는 건 인정도 메마르고 충효사상이 실종된 시대에 숨 쉬며 생활하는 한 사람으로 내 것 네 것이 칼처럼 분명하지 않고 사람들 가슴마다 따뜻한 정이 절로 넘쳤던 그 시절을 품고 싶은 심정 때문일 게다.
팍팍한 살림살이 살아내느라 부모들이 돌봐줄 겨를이 없었던 탓인지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남의 나라 개화하여 잘 살아보겠다. 발 벗고 뛸 적에 양반님네라 하시고 수염이나 쓸어내리며 헛기침으로 허세만 부리던 조상님들 덕인지 모를 일이지만 그 시절엔 아이들 머리에 웬 이가 그다지도 극성을 부렸던지 손자 손녀 대청에 앉혀놓고 참빗으로 아이들 머리를 빗겨주시며 가려움증을 없애 주시던 할머니 사랑의 손길이 눈에 선하다. 검정 고무신,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아려온다. 사는 이도 파는 이도 가난했던 그 시절 부모님 검정 고무신 한 켤레 사주시는 날이면 천하의 둘도 없는 선물을 받아든 듯 기뻐 날뛰던 동심들 자랑 끝에 쉬슨다는 속담처럼 아이들의 기쁨도 잠시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라 오래 신기 위해 얼마나 질기게 생고무로 만들었던지 당최 잘 달지도 떨어지지도 않았던 탓에 검정 고무신을 향한 아이들 원망이 소홀치 않았다. 그 당시 대개 가정의 아이들은 추석이나 설 명절이 돼야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얻어 입고 신었으므로 신고 있는 신발이 빨리 낡고 떨어져야 부모로부터 새 신발을 얻어 신을 텐데 하는 철부지 개구쟁이들 얕은 생각에 멀쩡한 신발을 담벼락이나 전봇대에 마구 문질러 되던 그 모습 그 표정이 못내 잊지 못할 안쓰러움으로 되살아난다.
누굴 위한 전쟁이었고 누굴 위한 희생이었는지 우익이 무엇이고 좌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역사의 꼭두각시가 된 채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의 가슴에 칼과 총부리를 겨누며 꽃다운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은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구실 좋은 핑계로 총성은 잠시 멎었지만, 나고 잘았던 고향을 지척에 둔 채 삼팔선이라는 철책 하나를 가운데 두고 남북의 젊은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워 대처하면서 조여오는 가슴을 화랑 담배 연기로 한순간 달랬다면 전쟁의 포화가 멎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너, 나, 없이 살기가 힘겨웠던 터라 맨정신으로는 버티기 힘이 들었던 서민층 사람들은 한탄과 원망이 절로 입 밖으로 뛰쳐나왔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했으며 자식 세끼를 먹여 살려야 했던 그 시절 한국의 가장들은 속 타는 심사 어디에도 풀 길 없어 애꿎은 아리랑 담배 연기 속에 신세타령을 실어 날려보냈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삼십도 짜리 진로 소주 몇 잔에 반 정신을 놓아버린 채 삼발이 화물차처럼 갈지자걸음으로 신장로를 휩쓸고 다니던 모습을 바라보면서 철부지 어린 나이에 무얼 안다고 애연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은 왜일까…
철부지 아이들 눈에도 시대의 고단함이 비췄던지 그도 아니면 생업 경쟁에 지친 아버지를 대신하여 하루빨리 가정을 책임져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이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군것질 거리가 변변치 못했던 그 시절에도 뽀빠이, 쫀드기, 달고나, 아폴로 등 동심을 유혹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남자아이들 사이에 유달리 인기가 많았던 것은 담배 껌이었다. 있는 자태 없는 자태 다 내어 한 개피 빼어 문 아이들의 어색한 모습이 연세 높은 할아버지 보시기엔 눈꼴이 시었던지 머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어린놈이 벌써부터 할애비와 맞담배질이냐며 흔치 않은 곰방대 군밤세례를 받았던 기억은 웃지 못할 이야깃거리가 더욱 앞서 마음이 저리다. 이러한 마음들이 자라 청바지에 통기타 시대의 청소년들로 성장하였고 좀 더 성장하여 비행기도 타지 않고 들어온 왜국 음률에 몸을 맞긴 채 흔들어대던 젊음이 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지만, 그때 들었던 음률은 요사이 인터넷 창을 통해 듣곤 하는데 분명히 같은 음률이나 느끼는 감동은 절반도 되질 않은 건 삭막한 세상살이에 퇴색해 버린 심사 탓일 것이다.
세월도 흐르고 시절도 흘러 점차 우리 기억 속에서 추억의 제물이 된 채 사라져가는 이러한 모습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처럼 풍요로운 시대가 올 수 있었을까 하고 옛 추억의 일기장 갈피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려는데 시대의 아픔이요, 우리 가슴 어디엔가 지난 상처의 굳은 딱지가 된 부산 동구 범일동 산 일 번지 판자촌 삶의 희로애락이 눈앞에 아롱거려 아픈 가슴이 더욱 저며왔고 흘러간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모두 쓸어담은 듯 지난 세월 아낙들이 사시사철 빨래하며 물 방망이질 하던 그 맑은 물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흔적도 없고 내 안태고향 도랑 물은 퇴색된 지 오래된 듯 맑지 못한 구정물로 흐르고 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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