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두레박

[마산] 부족함을 통한 구원

松竹/김철이 2011. 8. 13. 15:57

[마산] 부족함을 통한 구원/연중 제20주일(이정림 신부)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죄를 지으면 성체를 영해야합니까 아니면 영하지 말아야합니까”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 누가 너무 미운 마음이 들어서 죄스러운 마음에 성체를 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미사라도 드렸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다른 사람과 심하게 싸우고 난 후, 아예 미사에 빠지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죄를 짓고 나니 예수님을 뵙기가 너무 죄송스러운 것입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르게 생각하십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죄를 짓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이고, 사람이 죄를 짓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부끄러워서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죄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죄를 짓는 나의 부족함을 예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께 매달린다면, 우리는 죄의 용서를 통해서 구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가나안 부인이 그렇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 지르면서 예수님을 계속 따라다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강아지에 비유하여 말씀하셔도 떠나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부족하고 죄도 많이 지어서 어떤 소리를 듣던지 상관없습니다. 저와 저의 딸을 구해주실 분은 오로지 당신 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매달리는 것입니다. 자존심 따위는 다 벗어던져버립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모든 것들 다 맡겨드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완벽한 사람에게, 아니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용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인정할 때 하느님께 진정으로 매달릴 수 있고, 하느님께 매달릴 때 구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마음과 부족한 시선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평가절하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기가 힘들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모든 것을 다 바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기가 너무 힘들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죄를 짓는 사람에게도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나의 부족함과 우리의 부족함 뿐 아니라, 온 우주의 부족함을 다 채우고도 남는 사랑을 가지신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의 사랑에 나의 부족함을 맡겨드릴 때,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굳게 믿고, 우리의 부족함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이면서 살아갑시다. 그 삶이 신앙인의 삶이고 구원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