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야곱의 우물(부활 제3주일)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당신 말씀에 맛들이게 하시어 저의 마음이 말씀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
세밀한 독서 (Lectio)
지난주 복음에 이어 “주간 첫날” (24, 1)에 있었던 예수님의 부활이야기는 앞으로도 그리스도인 삶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그들의 부활체험에 동행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날” (13절)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오늘 말씀은 거룩한 독서의 가장 아름다운 전형입니다.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기대했던 권력과 명예, 열망과 해방이라는 날개를 접고 (20 – 21절), 어둠과 나약 그리고 무력함이 부르는 일상의 작은 마을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나자렛 예수님의 죽음으로 허탈감에 빠진 두 제자는 모든 기대를 떨쳐버리며 지난 이야기를 회상하듯 “그동안에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14절), “침통한 표정을 한 채” (17ㄴ절) 절망의 길을 걷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시며” (15절),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 (17ㄱ절), “무슨 일이냐 ?” (19ㄱ절) 하고 말을 건네십니다. 주도권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함께 동행하는 분은 예수님이지만, 우리가 가던 그 길을 멈추지 않는다면 오시는 그분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멈추어 서서” (17절)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 (19ㄴ절)을 그분께 전합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한테는 예언자이시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분으로 기대되었지만, 수석 사제와 지도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 지도 사흘째가 된다고 증언합니다.(19 – 21절) 내적인 것은 외적인 사건에 감추어질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16절) 것처럼 추종의 영광만을 기대했기에 수난과 부활의 예고를 잊어버렸던 것일까요 ? (9, 22. 44; 18, 31 – 34 참조)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혼자만 모르고 있는” (24, 18) 그분께 그들이 직면했던 객관적 사건만 아니라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요한 20, 1), 여자들이 발견한 빈 무덤과 천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에 관한 소식으로 자신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루카 24, 22 – 24 참조) 그러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무지에 잠긴 제자들의 마음을 밝혀 일깨우십니다. 예수님께서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 하시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추어져 있던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한, 모세와 모든 예언자한테서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을 설명해 주십니다.(25 – 27절)
주어진 현실만 바라보며 찾아가는 제자의 길은 목적지에 이르렀고 그들의 날은 이미 저물었지만, 예수님의 길은 더 멀고 시간은 더 짧았는지 모릅니다.(28절) 그러나 예수님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라고 청하는 제자들과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시어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29절) 그리스도의 첫 신자공동체가 친교와 빵을 함께 나누고, 함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구원받은 이들이 늘었던 것처럼(사도 2, 42 – 47), 함께 드리는 찬미와 나눔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보고 만나게 해주겠지요. 예수님께서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제자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30 – 31절)
제자들은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진 그분께 더 이상 연연해하지 않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 하며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 갑니다.(32 – 33절) 이처럼 주님을 만난 이들의 삶은 이제 자신의 길이 아니라 참된 자유와 진리로 이르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마태 2, 12; 마르 10, 52 참조) 그리고 “열한 제자들과 동료들” 의 체험에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 을 더하여 부활의 증언을 확고하게 합니다.(루카 24, 34 – 35) 그래서 제1독서에서처럼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은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사도2, 24) 하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묵상 (Meditatio)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 (루카 24, 32) 하루를 말씀으로 열고 마무리하는 것이 일상이지만, 정작 제 마음을 타오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묵상해 봅니다. 무엇이 우리의 일상을 멈추어 서서 듣고 증언하게 하는가 ? 무엇이 우리의 가려진 눈을 열어 보게 하며, 우리의 길을 되돌려 하느님께로 달려가게 하는가 ? 일에 골몰해 흘려들었던 말씀과 너무나 익숙하고도 당연하게 받아 모셨던 성체, 그런데도 말씀과 성체는 저의 하루를 비추고 동행하십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아 아프고 힘겹다가도 희망과 기쁨으로 불쑥 찾아오는 말씀 안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현존에 감사할 뿐입니다.
기도 (Oratio)
당신께서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당신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을 누리리이다.(시편 16, 11)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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