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두레박

[서울] 가지 않은 길

松竹/김철이 2011. 5. 14. 11:10

[서울] 가지 않은 길/고찬근 신부(부활 제4주일 · 성소주일)

 

 

‘성소(聖召)’라는 것은 말 그대로 聖스러운 부르심을 뜻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여러 가지 부르심 중에 어떤 것이 성소일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분은 예수님이시고 그분은 사랑 자체이시므로, 우리를 사랑에로 부르는 것을 바로 성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소가 있느냐?’ 하고 묻는 것은, ‘지금 너는 사랑의 삶을 살고 있느냐?’ 하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성소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들릴 수 있으며, 그것을 따르는 길 또한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주교님은 어렸을 때 집안이 몹시 가난했는데, 집에 오신 신부님께 어머니가 계란찜을 해 드리는 것을 보고 계란찜이 먹고 싶어 신학교에 가셨답니다. 후에 주교님까지 되셨지만… 또한 나환자의 벗이 되신 신부님도 계시고, 노동자가 되신 신부님, 병을 고치는 의사 신부님, 음악을 하는 신부님도 계십니다. 수도자가 되는 것도 성소이고, 성가정을 만드는 가장이 되는 것도, 성모님 닮은 가정주부가 되는 것도 성소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이 나에게 가장 원하시는 삶이 바로 성소의 삶입니다. 성소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여러 가지 도구를 필요로 하십니다. 어떤 모습의 삶이든 ‘사랑에로의 부르심’이라면 그것이 성소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사랑하기 위한 ‘자기 자리’를 찾아내고,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가 되면 그곳이 바로 ‘성소의 자리’라고 믿어도 됩니다. 제대로 사랑할 수 없고,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그곳은 성소의 자리가 아닙니다.
또한 성소라는 것은 계속되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기나긴 여정입니다. 우리 삶의 성소는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사제가 죽으면 수의 대신 첫 제의를 입히는 것입니다. 죽을 때 비로소 성소가 완성되어 사제가 된다는 의미이지요. 우리들의 사랑도 지치지 않고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소를 위해 기도하는 성소주일입니다. 사제와 신자들은 서로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은 서로 부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때로는 고독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성소를 받고 나름대로 성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한 곳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사제와 신자들은 서로를 위해 늘 기도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신자들에게 사제는 예수님의 향기가 되어야 하고, 사제에게 신자들은 목숨 바치고 싶은 연인이어야 합니다.

사제에겐 신자들의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착한 사제가 되도록, 건강하고, 늘 깨어 기도하고, 공부하는 사제 되도록, 또한 사제 공동체가 하나로 화합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또한 오늘, 요즈음 차츰 줄어드는 사제, 수도자 성소를 걱정하며, 부모들이 훌륭한 자녀를 바치도록, 하느님께 나아갈 자녀를 붙잡지않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