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기도는 주님 사랑으로의 거룩한 초대”/연중 제 17 주일
“기도는 주님 사랑으로의 거룩한 초대”
우리는 일상에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의 굴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는 여간해서는 잘 들리지 않음을 모두가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을 향해 걸어가고는 있지만, 그 영적인 여정에 있어 내 마음의 우선순위가 계속해서 ‘나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빠르게 의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지고 있는 마음이 오로지 하느님 한 분께로만 집중될 수 있도록 정신을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처럼 우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아주 완전하고 아름다운 기도로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제자들이 정말 기도할 줄을 몰라서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을까요?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날마다 기도를 부지런히 바쳤기에, 결코 제자들이 기도하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청한 것은, 그들의 공동체가 이스라엘 공동체와 확실히 구별되는, 아주 ‘특별한 기도’를 요구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즉, 자신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과 진심으로 대화하는 데 있어 특별히 남과 구별될 기도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님의 기도’를 하루에 세 번씩 바침으로써, 자신들만이 진실된 그리스도 공동체임을 강력히 드러내고자 했다는 것이 많은 신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기도는 내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또 생활 안에서 결실을 맺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올바른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늘 ‘내적침묵과 의식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 더 긴밀한 통교를 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들려오는 달콤하고 편안한 목소리에 결코 동요되어서는 안 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많은 수도자들과 사제들이 일관된 침묵을 지키고, 또 성찰함으로써 악으로부터 자신의 몸과 영혼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중세의 유명한 신비주의 영성가는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대 가련하고 나약한 자여, 잠시 멈추고 그대 자신을 되돌아보십시오. 그대는 누구이며, 대체 무슨 자격이 있기에, 우리 주님께 이런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영혼이 얼마나 게으르고 나태하면, ‘사랑’의 손짓과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입니까!” 참으로 나약한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하는 말입니다.
제자들에게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신 예수님께서는 나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는 이들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감동하여 그들의 어려움을 꼭 들어주실 것이라는 희망적인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에 힘입어서 이제 우리도 용기를 내어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아버지께서 우리의 간절한 청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조원동 주교좌성당 보좌 이광휘(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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