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두레박

[서울]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연중 제 17 주일

松竹/김철이 2010. 7. 23. 21:47

[서울]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연중 제 17 주일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 판단하는 그런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일수록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뭔가 영적인 체험을 하기를 갈구합니다. 우리 신자들조차 뉴에이지 운동이나 신흥 종교들에서 제공한다고 주장되는 영적 체험이나 기도 체험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리는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 우리에게 친숙한 곳에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일차적으로 외워서 바치는 ‘염경기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를 깊은 묵상과 영적 체험으로 이끌어주는 ‘묵상재료’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히 기도 중의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일곱 개의 청원기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쩐 일인지 네 번째 기도가 제 마음에 다가와서 계속해서 되새겨 보았습니다.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내가 날마다 먹기를 청해야 할 ‘양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선, 나는 날마다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도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으니,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먹을거리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큰 은총입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먹을거리가 없어서 목숨을 잃고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먹을 음식을 주십사 하느님께 청하는 한편 세상에 하느님의 손이 되어서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일부를 가난한 이들과 나눠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적이 있듯이,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습니다”(루카 4,4). 밥이나 빵이나 라면이 아니면서도 우리가 매일 먹어야 할 또 다른 ‘양식’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인지 감이 안 잡히신다고요? 예를 몇 개 들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사고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죽지 않고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은총’을 매일 청합니다. 또 우리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 우리에게 잘못하고 손해를 끼친 사람들을 오늘 하루 참아내고 가능하다면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매일 청합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대신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마음’을 매일 청합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청하는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다만 날마다 필요하기 때문에 숨쉬기 위해 공기가 필요하지만 공기의 존재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일이 드문 것처럼 그것들이 주어지는 것에 대해 우리가 감사함을 느끼는 적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에 우리 시선을 주목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아마도 자그마한 ‘신비체험’ 내지 영적체험을 가졌다고 확신해도 무방합니다.
문득 “감사를 느끼는 이에게 하느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신다”(본회퍼)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청해야 할 최우선의 ‘양식’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은총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욕심을 저버리고 감사할 때,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신희준 루도비코 신부
사제평생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