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꿀단지

믿음의 정신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것

松竹/김철이 2010. 6. 27. 10:41

믿음의 정신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것

평신도 주일이 되었다.
취지는 어디에 있겠는가.
신자로서 믿음의 정신을 발휘하며 살자는 것 아닐는지.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것은 넘쳐나고 사람들은 적응하기에 바쁘다.
끊임없이 따라가지 않으면 가라않게 되어 있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가정보다 일에 더 관심을 쏟는 것이 현실이다.
직업이 최고의 가치관으로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 이 흐름을 막을 수 있겠는가.
믿음의 정신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 평신도 주일의 메시지다.
어떤 삶이 그것인가.

언젠가 프랑스 전쟁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마지막이 되면 백발의 늙은 사제가 총살형에 처해지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군에 항거하던 지하조직을 숨겨 주다 발각된 것이다.
같이 일하던 젊은 사제는 눈물을 흘리며 속삭인다.
신부님 훌륭하게 죽어 주십시오.
그러자 노 사제는 웃으면서 답한다.
훌륭하게 사는 것에 비하면
훌륭하게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신자로서 죽는 것보다 신자로서 살아가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해야 되고 저것은 하면 안 되고
이쪽은 가도 되지만 저쪽은 가면 안되고,
망설임 없이 살아가는 신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현실에서 책에 있는대로 산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어떤 삶이 세상을 바꾸는 삶이겠는가.
질문의 답으로 예수님은 종말에 관한 말씀을 주신다.
죽음을 묵상하라는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한다.
그러니 그런 자세로 삶에 임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의 힘을 느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말을 너무 멀리 생각한다.
우주의 종말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종말의 일차적 대상은 개인이다.
나 자신인 것이다.
내가 죽으면 그 자체가 우주의 마지막인 것이다.
죽음을 통해 나는 우주의 종말 안으로 미리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종말의 말씀에서 먼저 생각할 것은 나 자신의 죽음이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우주의 종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바꾸려는 세상은 우주가 아니다.
먼저 자신에게 맡겨진 세상이다.
내가 만나고 숨쉬고 만들어 가는 세상이다.
그곳에 변화를 심자는 것이다.
종말의 정신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을 전할 수 있다.
전교가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확신없이 산다면 아무리 선교를 외쳐도 힘은 주어지지 않는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눈치 빠른가.
영리한 그들이 모를리 없다.
믿음의 정신은 새롭게 해야 실천이 가능해지고 기쁨 역시 함께 한다.

한편 심판 날이 가까워지면
여러 징조가 나타난다고 했다.
핵심은 가까 그리스도다.
내가 너의 구세주라며 등장한다는 것이다.
무엇이겠는가.
삶의 목적으로 여기며 살아온 것들 아니겠는가.
모든 것 바치며 섬겨온 것들이 아니겠는가.
노년이 가까워질 때 그것들이 구세주가 되어 주겠는가.
돈과 권력과 명예와 자녀들이
삶의 전부를 남아 주겠는가.
평화로운 노년은 주님이 주셔야 가능하다.
아름다운 노년은 젊은 시절의 연습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어떤 연습인가.
하느님의 힘으로 살려는 노력 아니겠는가.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다.
평신도 주일은 그런 사람을 기리는 날이다.

[신은근 신부님, 평화신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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