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를 좋은 땅으로 일구어 주십시오.”
주지욱 가시미로 신부님(개신동 본당 주임)
오늘 복음을 들으며 한 가지 의문 이 생겼습니다. ‘왜 농부는 씨앗을 길 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덤불에도 뿌 린 것일까?’하고 말이죠. 농부는 일부 주지욱 가시미로 신부 개신동 본당 주임 러 농사를 망치려고 한 것일까요? 이 는 당시의 농사 방식과 관련이 있습 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밭을 정비하 고 줄을 맞추어 씨앗을 심지 않았습 니다. 농부는 자연 그대로의 거친 땅에 바구니에 담긴 씨앗을 손으로 넓게 흩뿌리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 러다 보니 씨앗이 좋은 땅뿐만 아니라 길가나 돌밭, 가 시덤불 위에도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의 농사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이렇게 말씀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농부는 먼저 밭을 살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 딱딱해진 곳은 쟁기로 갈아엎었다.
돌이 많은 곳은 돌을 골라냈다.
가시덤불이 자란 곳은 가시를 뽑아냈다.
그리고 물길을 내고 흙을 부드럽게 한 뒤, 씨앗을 정성껏 심었다.
이 밭도 처음에는 굳어 있었고, 돌도 많았고, 가시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포기하지 않고 갈아엎고, 골라내고, 기다렸기에 좋은 땅이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바로 좋은 땅은 농 부의 손길을 기꺼이 받아들인 땅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오늘 복음으로 돌아가 보면,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 다. 그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땅이 된 다음에야 씨앗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황 레오 14 세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시며, 이 씨 앗을 뿌리는 사람은 씨앗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크게 계 산하지 않는 ‘아낌없는’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 고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이 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 장 좋은 밭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씨앗을 주시는 분 이 아니라, 언제나 먼저 당신 말씀을 넉넉히 주시는 분 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늘 효율성을 따 지고 계산하는 데 익숙합니다. ‘이 사람은 가능성이 있 을까?’, ‘저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부족하 니 하느님께서 나를 쓰실 수 없지 않을까?’그러나 하느 님은 사랑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열매 맺 기 어려워 보이는 곳에도 말씀을 뿌리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지금의 우리 모습만 보지 않으시고, 언젠 가 변화될 우리 마음을 믿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 우리 마음의 밭을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 니다. 내 안에 딱딱해진 마음은 없는지, 치우지 못한 돌 은 없는지, 걱정과 욕심의 가시덤불은 없는지 돌아봅시 다. 그리고 주님께 이렇게 청합시다. “주님, 제 마음을 내어드립니다. 좋은 땅으로 일구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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