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말씀의 이삭 | 환대의 공동체를 고대하며

松竹/김철이 2026. 6. 30. 14:00

환대의 공동체를 고대하며

 

 

며칠 전 퇴근길, 아파트 출입구에 낯선 서명대가 보였 습니다. 지역 경쟁력과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이 지역 공공용지에 계획된 임대주택 건설을 철회하고 국제학교 유치를 촉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며 마음 이 착잡했습니다. ‘정주 여건 개선’이란 명분 속에 ‘우리와 다른 이들’을 우리의 이웃에서 배제하려는 뜻이 담겨 있 지는 않은지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배제하려 는 마음은 분열과 갈등의 씨앗입니다.

 

뜻하지 않게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 에 서게 돼,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심각성을 절감한 터라 제가 이런 문제에 과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차례 불려 나간 국정감사에서 저는 아무리 마음을 다해 도 제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혀 가닿지 않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온 제가 언론 비 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보인 눈물까지 ‘악어의 눈물’이라며 비아냥의 대상으로 삼는 SNS 상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생각이나 처지가 다른 사람 을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수준에 이 른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시선을 제게로 돌리면 제 안에도 다른 사람을 배제하려는 마음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게 보였습니 다. 다른 사람이 마음에 철벽을 두르고 있다고 생각했지 만, 그들이 제 마음의 철벽을 미리 알아본 것인지도 모르 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의 식탁 공동체를 떠올려 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장애인, 병자, 세리처럼 당시 사 회에서 배제되거나 손가락질 받던 이들을 당신 식탁에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룬 이 ‘환대의 공 동체’를 하느님 나라로 제시하며 이 땅에 그런 공동체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공동체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배우고 변화되는 공간’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 런 공동체를 다큐 영화 〈남태령〉에서 보았습니다. 2024 년 동짓날 밤 경찰차 벽에 막힌 농민들을 돕기 위해 달려 나왔던 사람들은 먹을 것을 나누며 춥고 긴 밤을 함께 견 딥니다. 그리고 농민·노동자·여성·소수자 등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서로의 처지를 알게 되 고, 공감과 연대로 나아가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물론 남태령에서 한순간 이루어졌던 공동체 경험은 그 범위 등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경험 이 축적되고 확대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극단적 대 립을 넘어 포용적 공동체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 다. 그래서 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배우고 변화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환대의 공동체’가 일상 속에서 확 산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