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 있다. 성전 앞자리, 제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묵주를 굴리시는 할머니 자매님들이다. 길이 미 끄러운 날에도,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그분들은 늘 먼저 와 계셨다. 처음에는 그 모습 이 그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 다. 그분들의 꾸밈없는 신앙이 자꾸만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자꾸 핑계를 대고 있었다.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럴듯한 이유를 늘어놓으며 기도와 평일 미사를 소홀히 하게 되었 다. 본당에서 봉사를 하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은 얼마나 담겨 있었을까 생각하면 부 끄러워진다. 물론 처음 시작은 보람과 기쁨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다는 말을 많이도 했다. ‘왜 나만 이렇게 할 일이 많은 걸까?’ 티도 안 나는 나의 수고와 노력이 부질없다는 생각들이 슬며시 올라왔다. 입으로는 봉사라고 했지만, 어쩌면 나는 하느 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아이들만큼은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잘 자라주기를 바랐다. 아이들은 부 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데, 나는 과연 어떤 등을 보여주고 있었을까?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의 시간은 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아들은 성당 가는 일을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활동하던 복사단도 중학교에 입학하며 그만두었고, 미사보다는 친 구가 우선이 되어 성당과도 멀어졌다. 때가 되어 견진성사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반응 은 차가웠다. “싫은데, 왜 해야 되는데?” 아이를 설득하려 잔소리도 해보고, 화도 내봤 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마음은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이를 바꾸려고만 했지 정작 나는 변하려 하지 않았음을.
“주님,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제가 먼저 변화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
억지로 무언가를 해내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분위기를 먼저 느끼는 존재였다. 얼마 전만 해도 성 당 이야기를 하면 금세 표정이 굳어지던 아이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 던 중 할아버지의 암 진단이 아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었고, 그렇게 거부하던 견진성 사를 할아버지를 위해 봉헌하겠다고 결심해 주었다. 다시 성당에 나와 견진 교리를 시 작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아들은 견진성사를 받을 만큼 아직 완전히 성숙한 신앙인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나 역시도 그렇다. 여전히 흔들리고, 게 으르고, 때론 하느님보다 세상 것들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산다. 하지만 이제 안다. 하 느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려는 마음을 기다리신 다는 것을. 그렇기에 나의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 나 주님께 걸어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키는 그 믿음. 그분들도 아마 수많은 흔 들림과 눈물의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오셨을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전 앞자 리를 지키는 자매님들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 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지.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들도 삶이 흔들리는 날, 어린 시절 어렴풋이 보았던 엄마의 기도하는 뒷모습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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