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따리

가정 안에서의 환대 | 부부 갈등_02 부부상담에 실망하는 내담자들

松竹/김철이 2026. 6. 25. 17:30

가정 안에서의 환대 | 부부 갈등_02 부부상담에 실망하는 내담자들 

 

 

부부상담실을 찾는 부부들을 살펴보면, 대개 한 사람이 먼저 상담을 제안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흔쾌히 동의하여 함께 오기도 하지만, 마지못해 이끌리듯 상 담실 문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담을 먼저 제안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대개 비슷한 기대가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의 힘을 빌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배우자 를 설득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지 않던 그 사람이, 상담자 의 입을 통해서라면 마침내 변화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다.

 

반면, 따라온 배우자는 이미 마음속에 방어막을 치고 오는 경우가 많다. 상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십 중팔구 자신을 향한 불만이나 지적일 것이다. 굳이 장소만 바꿔 그런 말을 들어 야 하나 싶으니, 상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다. 그런데 막상 상담이 시작되면, 부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흘 러간다. 이 지점에서 많은 부부가 당황한다. 상담자가 자기 편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태도에 실망하거나 서운함을 느낀다. 반 대로 비난을 각오하고 왔던 배우자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대화의 흐름에 오히 려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내가 만났던 한 부부도 상담 초반에 이런 경험을 했다. 아내는 남편의 욱하는 성 격을 반드시 고치고 싶어 했다. 아무리 차분하게 말을 건네도 남편은 이내 화를 낸다며, 상담자가 자신의 입장에 힘을 실어 남편의 문제를 분명히 짚어주기를 바 랐다. 하지만 상담사는 판사가 아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자리도 아니 다. 상담의 관심은 시시비비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그래서 어느 한쪽 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공간을 열 어준다. 첫 상담이 끝났을 때 아내는 적잖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남편 은 자신의 이야기를 존중받았다는 느낌에 한층 가벼운 표정으로 상담실을 나섰 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첫 상담 이후 발길을 끊는 부부도 많다. 그런데 이 부 부는 두 번째 상담에 나란히 나타났다. 더 놀라운 것은 아내의 얼굴이었다. 지난 번과 달리 한결 밝고 가벼워 보였다. 남편이 주차를 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 이, 아내는 지난 한 주의 변화를 조용히 들려주었다. 30년 동안 말만 꺼내면 욱 하던 남편이 요즘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이해하려 애쓴다는 것이었다. 남편도 지난 상담이 자신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했다. 판단받지 않고 이야기 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 무척 편안했고, 미처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상담자가 대신 짚어주자 응어리졌던 마음이 풀렸다고 했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아내의 말이 이전보다 훨씬 잘 들렸고, 늘 관계를 위해 애써온 아내의 진심이 비 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은 지적이나 비난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내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 동안에 쌓인 불만과 지적이 켜켜이 담겨 있었다. 남편을 움직 인 것은 비판의 날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존중이었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상담의 방식이 결국 가장 깊은 변화를 이끌어냈고, 그 변화의 온기는 두 사람 모두에게 고루 스며들었다. 관계는 상대를 바꾸려는 힘이 아니 라, 마음을 이해하려는 조용한 태도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