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는 마리아
중국 작가 위화의 새 에세이집을 읽고 있습니다. 작가 는 역사적 상처들을 기록하면서도 민중의 강인함과 고유 의 윤리, 해학과 포용을 잃지 않습니다. 책에는 특이한 러 시아 작가가 등장합니다. 국제 행사에서 여러 번 만나는 데 늘 신발끈이 풀려 있죠. 시간이 지나 작가는 긴장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라고 설명합니다. 그 기억을 통해 위 화 작가는 꽁꽁 매여 있는 자기 신발에 대해 생각하죠.
긴장과 불안에 관해서라면 저도 한마디 할 자격이 있 습니다. 상담을 받았을 때 전문가는 손가락을 치켜 올리 며 “아…주 예민합니다.” 하고 설명했지요. 그런 사람에 게 미사는 어땠을까요? 예비 신자 시절 저는 모든 것이 신경 쓰였습니다. 휴대폰이 울리거나 누군가 기침을 시작 하고 중간에 자리를 떠버리며 복음을 잘못 읽고 성가대가 음을 틀릴 때마다 날이 섰죠. 제 실수에 대해서는 더 각이 서 있었습니다. 기도문을 틀리거나 일어나야 할 순간에 앉아 있거나 미사포만 흘러내려와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실수들이 ‘일상’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일어난다는 것을요. 이 제 저는 다른 의례나 행사에서도 잘 긴장하지 않게 되었 습니다. 직업에도 큰 도움이 되었죠. 요즘 작가들은 독자 를 자주 만나게 되니까요.
복음서를 읽다가 생각해보니 거기에는 ‘실수’라는 단어 가 없었습니다. 구약에는 등장하니 개념 자체가 그 시대 에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왜 그 많은 사건과 행동들 중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정오(正誤)에 맞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는 태도인 ‘실수’가 필요치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런 사사소소한 판단들 때문에 괴로워하기에 우리는 더 험난 하고 어려운,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더 환하고 환희에 찬 순간들을 향해 걸어가야 할 존재들이기에 우리가 속상 해하는 ‘실수’란 그저 범상한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뜻 이 아닐까.
위화 작가의 책에는 어린 시절 먼바다로 떠밀려간 일 화도 등장합니다. 실수를 깨달았을 때 이미 해변가는 점 처럼 작아 보였죠. 온힘을 다해 그쪽으로 헤엄치려던 작 가는 나중에는 생각을 바꿔 그냥 바다를 믿기로 합니다. 언젠가는 파도가 육지로 데려다주겠지, 그렇게 몸을 맡기 고 떠다닌 끝에 정말 물결이 바뀌고 소년 위화는 으슥한 밤 모래사장으로 돌아옵니다. 무려 10킬로미터를 떠내려 온 지점이었습니다.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몸부림 쳤다면 오히려 위험했겠지요. 힘이 빠져버렸을 테니까요.
지금도 마리아는 전문가에게서 불안에 대해 충고를 듣 지만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실수라는 단어 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 그것은 아마 무(無), 마리 아라는 형상을 빚을 때 한번도 떠올리지 않은 인간의 불 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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