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말씀의 이삭 | 듣는 주님

松竹/김철이 2026. 5. 19. 14:30

듣는 주님

 

 

저는 스스로 동네 성당에 가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 다. 아는 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안에 종교를 가진 사 람도 없지요. 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마음의 아 무 거리낌도 없었습니다. 신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성 찰도 필요하지 않았지요.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설가들이 란 의심이 많고 매 상황을 관찰하며 인간의 심연을 들여 다보고 마음의 형태를 ‘언어’로 바꾸는 데 골몰하며 살아 갑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그런 기질은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순하게 받아들였죠.

 

그리고 나서 저는 약간 괘씸한 생각이 들었는데, 성경 을 읽다 보니 그간 접한 문학작품과 영화 등에서 성경적 모티프를 얼마나 반복해 왔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습 니다. 종교적 배경이 없고 한국 문학만 열독해온 저는 다 양한 이야기들의 바탕이 성경이라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 죠. 마치 남들이 다 알고 있던 동네 맛집을 혼자만 못 들 은 것처럼 다른 애들은 다 알고 있는 ‘출제 경향’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아니, 세계의 반쪽을 잃고 산 듯했 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쁨이 차올랐지요. 제게는 또 다른 세계, 이야기의 바다가 열린 것이었습니다.

 

그중 제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서사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신 예수님(루카 24장)이십니다. 그 복 음을 읽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양 청취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상상합니다. “그게 바로 내 이야기다.” 하지 않고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는 예수님의 속마음이 뭘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성령의 강림으 로 부활을 깨닫게 되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제게 는 ‘듣는 주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 오까지 계산해 보면 성인 걸음으로 3시간 정도인데 그 시 간 동안 묵묵히 들어주셨습니다. 슬픔과 비통함, 어쩌면

의심을 고백했을지도 모르죠, 우리가 사람을 잘못 본 것 일까? 메시아가 아니었을까? 인간의 마음은 어지러운 무 늬로 가득 차 있고 후회와 분노는 끝이 없는데 그것을 일 시에 없애지 않고 예수님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 애쓴다는 것이고 배려한다 는 것이겠지요.

 

저는 우연히 소설을 쓰기 위해 성당에 처음 들어섰습 니다. 바로 여러분,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 어서였지요. 그 후 종교는 자연스럽게 제 일상이 되었고 거기에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든가, 극적인 사건들이 벌 어졌다든가 하는 드라마는 없었죠. 하지만 엠마오 복음을 읽을 때면 저는 마치 제가 그 길을 걸었던 것처럼 느껴집 니다. 슬픈 일이 많았던 어느 유년에, 방에 틀어박혀 있었 던 이십 대 시절에, 차라리 죽음을 바라던 순간순간들에 나는 엠마오를 걷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울고 화내고 절 망하고 주먹을 쥐는 제 곁에 예수님이 가만히 같이 걷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듣는 시간이 제 나이만큼, 그 러니까 사십 년이 아니었나 하고요.